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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 리뷰어(북딩 3기) 활동으로 책을 무료로 제공받았음을 미리 밝힙니다.


심리학을 좋아해 심리학 책을 많이 읽었다. 최근에는 에세이인지 인문교양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책도 꽤 읽었다. 서점에서 인문/심리학에 진열되었지만 에세이 같다거나 문학/에세이에 있었지만 인문/심리학에 더 가까웠다거나. 이번에 읽은 책은 인문/심리학 책인 줄 알았는데 과학/뇌과학 책이었다. 서점에서도 과학 분야로 구분되었다.

 

이 책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의 근본적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대중과학이나 심리학 책과 비슷하다. 하지만 접근법이 다르다. 지금껏 뇌를 주제로 한 많은 책은 대부분 행동 연구에 의존했다. 행동 연구는 새롭게 기발하지만 행동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 뇌를 살펴보지는 않는다. (중략) 이 책에서는 인간 의식에 대한 여러 질문을 연구하기 위해 뇌라는 블랙박스를 균열시킨 뒤 내부의 작동방식을 관찰할 것이다. - 11~13쪽

 

이 책의 2쪽에서 저작권 안내문구를 보면, 이 책의 원서가 처음 출간된 때(원서출간)는 2016년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위에서 말한 대로, 뇌라는 블랙박스를 들여다본 책이 별로 없었다. 2020년을 코앞에 둔 지금이야 국외뿐 아니라 국내 저자들이 쓴 뇌과학 책이 꽤 있다. 한국어판으로 출간되기까지 시간이 덜 걸렸다면 더 '독보적'일 수 있었을 듯하다. 그 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게 이 책은 유용했다.

 

엘리에저 스턴버그,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이 책은 질문을 던지는 방식(13쪽)'으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장 제목이 모두 의문문이다. 8가지 이야기 모두 흥미로웠지만 한 가지를 꼽자면, '8장 다중인격은 똑같은 안경을 공유하지 못한다?'를 고르고 싶다. 제임스 맥어보이가 출연한 영화 <23 아이덴티티>(Split, 2016)가 생각났다.

 

에벌린의 병명은 공식적으로는 다중인격장애라고 불리는 정신질환인 해리성정체감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였다. 이 질환으로 인해 그녀에게는 여러 개의 다른 인격이 생겼다. 성인 여자로서의 인격은 '프래니 F'였고 그녀에게는 신시아라는 아이가 있었다. 열 살 소녀 세라라는 인격도 있었다. '겁이 많게 생긴' 세라는 '부스스한 빨간 머리'에 갈색 눈, 주근깨가 있는 외모였다. 마지막 인격은 '천사처럼 생긴' 네 살 여자아이 키미로 파란 눈에 짧은 금발머리였다. 활동 중인 인격에 따라 에벌린의 행동도 바뀌었다. (중략)
에벌린이 자아를 오갈 때마다 바뀌는 것은 인격만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키미는 오른손으로 연필을 잡았지만 에벌린은 왼손잡이였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정신과 의사들이 시력 검사를 했을 때였다. 일반적인 시력검사표로 측정한 에벌린의 시력은 법적 시각장애인의 자격이 주어지는 20/200(우리나라에서는 0.1에 해당)이었다. 프래니 F와 신시아의 시력도 20/200이었다. 반면 세라의 시력은 20/80(0.25)이었고 키미의 시력은 훨씬 좋은 20/60(0.33 정도)이었다. 20/60과 20/200의 차이는 안경만 써도 되는지, 법적 시각장애인에 해당하는지의 정도로 컸다. 에벌린에게는 안내견이 있었지만 그녀의 다른 자아 하나는 안경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어쨌거나 두 인격은 똑같은 눈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 338~340쪽

 

<23 아이덴티티>에서 케빈(제임스 맥어보이 분)도 그랬다. 케빈은 23가지(+1) 인격이 있었다. 성격뿐 아니라 행동 특징(습관), 관심사, 병력도 다르게 나타난다. '오웰'일 때는 안경을 써야 한다거나 '제이드'일 때는 당뇨가 있다거나.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에서야 케빈이 여러 인격을 오갈 때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여러 인격을 연기한 제임스 맥어보이에게 감탄할 뿐.

 

책에서는 '한 사람이 다중인격을 오가면 뇌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359쪽)'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PET 스캔, fMRI 촬영으로 뇌의 변화를 관찰한다. 또한 최면을 활용한 마비(반대로, 치료도) 사례를 설명한다.

 

에벌린의 사례에서 확실해졌듯이 트라우마 후에 생기는 정신의 구획화는 초정밀 프로세스가 아니다.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뇌가 고통스러운 감정이나 기억을 격리할 때 자아의 일부도 함께 격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해리감이 불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의식계는 정체성의 더 큰 덩어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아의 한 조각을 성공적으로 분리시켰다. (후략) - 368쪽

 

뇌과학자의 노력 덕분에, 갈수록 뇌의 비밀이 밝혀지고 있다. 흥미롭다.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그 많은 것 중 진짜가 아닌 것이 얼마나 될까. 어느 것을 믿고 어느 것을 가려야 할까. 내 무의식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아 그건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책 제목 :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분야 : 과학
소분야 : 뇌과학
지은이 : 엘리에저 스턴버그
출판사 : 다산사이언스
쪽수 : 432쪽
출간일 : 2019년 12월 10일 
ISBN : 9791130627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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