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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지성에 서평단을 신청하여 책을 무료로 제공받았음을 미리 밝힙니다. 다만, 서평에 제한은 없어 제 마음대로 적어봅니다.


출퇴근 시간이 아까워 책을 읽기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이제 어느 정도 습관이 되었는지 출퇴근하지 않는 지금도 꾸준히 책을 읽고 있다. 하지만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독서고수는 되지 못했고 취미독서가 수준이라 눈에 띄는 책, 솔깃한 책을 읽는 편이었다. 광고인 줄 뻔히 알면서도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를 고르는 경우가 많았다. <공부머리 독서법>을 읽은 뒤로, 내 독서가 스킵(건너뛰며 읽는) 독서는 아니었나 반성했고 더 깊이 있는 독서로 나아가고 싶었다.

 

올해(2020년)부터는 방 한켠, 사두기만 하고 읽지 않은 고전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나마 익숙한 동양고전(논어, 맹자 등)부터 시작했다. 최근에 국내 저자의 에세이로만 독서 편식을 한 탓에, 문체가 조금 딱딱하게 느껴졌다. 진도도 잘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읽으니 읽어지긴 하더라. 그리고 이 책,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이 서양고전으로는 첫 책이었다.

 

만약 서평단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수사학이 아니라 정치학을 먼저 읽었을 듯하다. 내가 가진 책에 수사학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로 말이다. 책을 덮고, 수사학을 먼저 읽은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단 느낌이다.

 

수사학...

 

전공 수업 때나 논술지도사 자격증을 준비하며 들어본 말인 듯하다. 당당하게 들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건, 공부하긴 했으나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인 탓이다. 힘들 게 공부해놓고 다 잊었다. 학교교육으로 영어를 배울 때 영어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수사학도 내게는 그런 존재다.

 

배워야만 하는 그때엔 그 필요를 몰랐고, 사회에 던져진 지금에야 그 필요를 느끼는 것이랄까. 요즘처럼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창구가 많은 때라면 더더욱 수사학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수사학은 각각의 사안과 관련해 거기 내재된 설득력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다른 기술 중에는 이것을 과제로 삼는 것은 없다. 다른 기술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분야에 속하는 것들을 가르치고 설득한다. (중략) 반면에 수사학은 어떤 것이 주어진다고 해도 거기에서 설득력 있는 요소를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사학이라는 기술은 특정 부류를 자기 영역으로 삼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 17쪽

 

책을 읽으며 조금 놀랐다. 내가 생각한 것만큼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아니어서... 오히려 '이렇게 명료한 설명이라니!' 감탄했다. 각 장마다 '이제 이걸 설명할 거야. 지금까지 이런 내용을 살펴봤어.' 하는 친절함이 가득했다. 공감이 가는 내용도 많았다. 내가 밑줄 치지 않은 부분이 드문 수준이다. 특히 다음 내용, 제5장 행복에 나오는 대목이다.

 

모든 권유와 만류는 행복과 관련되어 있고,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냐 행복을 방해하는 것이냐와 연관된다. (중략) 행복은 미덕을 실천하는 삶, 풍요로운 삶, 지극히 즐겁고 안전한 삶, 재물이 풍족하고 육신이 편안한 가운데 그런 것을 지키고 사용할 힘이 있는 것이다. 이 중에서 어느 하나 또는 여럿이 합쳐진 것이 행복임은 거의 모두가 동의한다. - 35쪽

친구의 정의를 알면, "친구가 많은 것"과 "훌륭한 친구가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금방 드러난다. 친구란 어떤 사람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를 위해 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 39쪽

 

설득의 토대가 되는 것을 살펴본 것인데,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은 전체 3권(part)으로 구성되었다. 제1권에서는 수사학의 정의, 유형, 설득 요소 등을 다룬다. 제2권에서는 심리 상태, 나이, 부, 권력에 따른 청자의 유형과 연설에 필요한 여러 명제를 살펴본다. 그리고 내가 가장 솔깃하게 읽은 제3권에서는 문체, 전달 등 실제 표현법을 이야기한다. 연설이 중심인 설명이었지만 머릿속에서는 글쓰기로 정리하며 읽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연설의 용도에 따라 어울리는 문체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문서용 문체와 논쟁용 문체가 다르고, 대중 연설의 문체와 법정 변론의 문체도 다르다. (중략) 문서용 문체에서는 정확성이 가장 중요하고, 논쟁용 문체에서는 전달이 잘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274쪽

낭독을 위한 연설의 문체는 글로 쓰기에 가장 적합한 문체다. 이 연설의 용도 자체가 낭독을 위한 것이다. 그다음으로 글로 쓰기에 적합한 문체는 법정 변론을 위한 연설이다. (중략) 문체는 장황해도 명료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간결해도 명료하지 못하다. 따라서 그 중간이 적절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 275쪽

 

연설이 중심인 설명이었지만 머릿속에서는 글쓰기로 정리하며 읽었다. 심지어 274쪽 설명을 SNS로 바꿔서 말해도 어색함이 없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SNS의 용도에 따라 어울리는 문체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라고...

 

무엇을 '고전'이라고 하는지 여러 설명을 읽었지만 직접 고전을 읽어보니 잘 알겠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가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

 

서두에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으로 서양고전을 시작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읽어온 취미독서가라는 것도 이미 밝혔다. 그런 나도 흥미롭게 읽었다. 말하기, 글쓰기에 관심이 있고 인문 고전 독서를 시작하고 싶은 이에게 권한다. 과잉 SNS 시대에, 나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이에게 권한다.


 

책 제목 :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분야 : 인문
소분야 : 서양철학
지은이 : 아리스토텔레스
출판사 : 현대지성
쪽수 : 332쪽
출간일 : 2020년 02월 05일 
ISBN : 9791190398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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