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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이 책, 『일의 기쁨과 슬픔』 이야기를 들었다. 공감이 정말 잘 되는 소설이라는 칭찬이었다. 작가 이름을 보니 어디서 들은 듯했다. 검색해 보니, 『새벽의 방문자들』이 나왔다. 『새벽의 방문자들』은 페미니즘을 테마로 6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된 책이며, 표제작 「새벽의 방문자들」이 바로 장류진의 작품이었다.

 

2019/07/14 - [책수다] - 『새벽의 방문자들』 부디 말도 안 되는 소설이기를

 

그때 나는 소설도 소설이지만 작가 노트가 더 인상적이었다. "응, 이거 네 얘기야. 이 글을 읽고 있는 너, 바로 당신."(『새벽의 방문자들』 p.43)이라고 통쾌한 한 방을 날렸던 그 작가, 장류진. 『새벽의 방문자들』이 여러 작가의 단편을 수록한 책이라 장류진의 작품이 한 편만 실려 있어 아쉬웠는데. 얼른 그의 작품을 또 만나고 싶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일의 기쁨과 슬픔」, 「새벽의 방문자들」을 포함해 총 8작품이 수록되었다. 수록 순서는 다음과 같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소설 모두 회사를 다니며 발표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30대 직장인의 일기를 훔쳐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거 너무 내 얘기 같다고 느낀 부분도 많았다.

 

잘 살겠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다소 낮음
도움이 손길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
새벽의 방문자들
탐페레 공항(발표 당시 제목 'Do or Do Not')

 

이번 책의 표제작은 「일의 기쁨과 슬픔」이지만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잘 살겠습니다」였다. 물론 「잘 살겠습니다」 주인공처럼 회사에 청첩장을 돌린 일도 청첩장을 주기 위해 누군가에게 식사 대접한 일도 없었다. 하지만 첫 문장 "회사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돌리기 전에 예상했던 어려움은 이런 거였다."부터 마지막 문장 "부디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까지, 마치 내가 겪은 일을 돌이켜 보는 듯 생생했다. 내게도 주인공처럼 준 것과 받은 것을 계산하는 조금 치졸한 면이 있고, 내게도 빛나 언니처럼 눈치는 어디다 내던진 것 같은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생각한 '청첩장을 주려는 사람'에 포함되지 않았던 빛나 언니. 자기가 먼저 청첩장을 달라고 하고 '특'에비동으로 식사 대접까지 받고도 결혼식은커녕 축의금도 보내지 않은 빛나 언니. '확정일자'를 모르는 어리숙한 사회인이자 더치페이 눈치도 없는 빛나 언니.

 

  "축의금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해. 그까짓 오만원 내가 내준다고."
  "내가 지금 돈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 그깟 오만원 아끼려고 내가, 이러는 것 같아?"
  어째서인지 나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빛나 언니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원을 배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후략)" - 28쪽

 

주인공은 받았어야 할 축의금 대신 먹은 밥값 25,000원에서 청첩장을 주면서 산 밥값 13,000원을 제한 12,000원어치 선물을 산다. 가격을 채우기 위해 산 1,000원짜리 카드 때문에 내키지 않았지만 손편지도 쓴다. 주인공은 진짜 사회가 무엇인지 알려주겠다고 벌인 소심한 복수였다. 하지만 '손편지'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예감했다. 아무래도 실패한 복수가 되겠다고.

 

역시나였다. 손편지에 감동한 빛나 언니가 손편지를 찍어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 그 순간 주인공은 K.O. 당한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사회 눈치가 하나도 없는 이에게 복수란 먹힐 리 없는 일이었다. 당하는 사람이 당한다고 느껴야 복수도 성립되는 거니까.

 

빛나 언니는 잘 살 수 있을까. 부디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 33쪽

 

그래서 마지막 문장인 위 내용에, '체념' 한 스푼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때 '체념'은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함'이란 뜻이 아니라 '도리를 깨닫는 마음'의 뜻이다. 빛나 언니는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깨달음. 주인공이 당연하게 여기는 눈치, 상식, 사회생활이란 것이 없는 세계. 그 세계에서 '나'를 바라보면 '나'의 세계는 너무 계산적이고 속물 같은 사회일까.

 

어느 세계에 살고 있든,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에 산다. 나만의 논리로 돌아가고 설명되는 세계. 그 세계에서 '부디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책 제목 : 일의 기쁨과 슬픔
분야 : 소설
소분야 : 한국소설
지은이 : 장류진
출판사 : 창비
쪽수 : 236쪽
출간일 : 2019년 10월 25일 
ISBN : 9788936438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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