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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가득한 날이었다. 내가 올려다본 하늘은 그동안 알고 있던 '하늘색'이 아니었다. 먼 훗날에는 하늘색이 하늘색이 아닐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CF를 보면, 아이들이 갈색, 황토색이 섞인 색으로 하늘을 칠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무슨 색이냐고 물어보면 "하늘색이잖아요." 하고 답한다. CF 속 그 모습처럼 미세먼지 가득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있다.

 

각각의 색깔은 고유한 명칭을 갖는다. 과거 대한민국에선 살색의 명칭을 두고 한바탕 논란이 있었다. (중략) 그 이후로도 또 한 번의 논란이 있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하늘색이었다. 하늘색은 살색과는 다르게, 색의 명칭이 바뀐 것이 아니라 명칭에 따른 색이 바뀐 경우였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알고 있는 하늘색은 어떤 색일까?
혹시 파란색에 흰색을 섞은 그런 색이라면 당신은 아주 먼 옛날 사람일 것이다.
지금의 하늘색, 적어도 이 글을 쓰는 내가 알고 있는 하늘색은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뿌연 연기에 강황 가루를 솔솔 뿌려 놓은 듯한 그런 색이다. - 188~189쪽

 

미세먼지를 주제로 한 단편소설 5편이 수록된 『미세먼지』이다. 오늘 포스팅하려는 작품은 가장 마지막에 실린 「우주인, 조안」. 이 소설은 이미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 예정인 작품이다. 

 

SF 단편소설집 『미세먼지』

 

우주인 조안

「우주인, 조안」은 미세먼지 가득한 대한민국이 배경이다. 외출할 때는 미세먼지를 피해 우주복처럼 생긴 청정복을 입는다. 하지만 청정복이 5억 정도나 되는 가격이라 입을 수 있는 가정과 그 가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이 나뉘게 된다. 청정복을 입는 C(Clean)는 평균 수명이 100세, 청정복을 입지 못하는 N(No clean)은 평균 수명이 30세다.

 

그 시절 N들은 빈부의 차로 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비극적인 삶이 자신의 대에서 끊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고 N은 과도기를 거쳐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 냈다. 가장 혈기 왕성할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그들은 죽음 앞에서 자유를 활활 태우며 살았다. 그들은 뭐든 마음대로 했다. 미래를 대비한 경제력이 의미를 잃자 돈에도 크게 욕심을 두지 않았다. - 192쪽

 

주인공 이오는 C로, 삼수 끝에 들어간 대학에서 청정복 회사에 취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학생이다. 삶의 28%쯤 살았다고 생각한 평범한 C였다. 한평생 입고 산 청정복이 불량품이고, 그 때문에 목에 혹이 생겼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조안은 이오와 같은 대학교 학생인 N이다. 학교의 유일한 N이자 또라이라고 소문이 파다하다. N의 입장에서는 수명이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것이니.

 

"응. 신기하지? 뭐 다니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굳이 다니는 사람을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걸. 심지어 저 아이 우리와 동갑이래. 그 말은  이제 고작 수명이 2~3년 남았다는 거지." - 198쪽

 

이오와 조안은 '사랑과 문학'이라는 과목에서 기말 과제 파트너가 된다. 각자 데이트로 하고 싶은 것을 적기로 한다. 술술 적어내는 조안과 달리 이오는 칸을 채우기가 어렵다. 남은 생이 이렇게 짧아질 줄은 몰랐을 테니까.

 

"나는 작은언니처럼 살 거야. 언니는 지금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만 하나도 불안해하지 않아.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다 했대. 그래서 많은 돈을 벌었을 때도 언니는 청정복을 사 입지 않았어. 나에게도 권하지 않았고. 대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라고 했어. 그것이 어떤 일이든 언니가 도와주겠다고. 그래서 나는 대학에 온 거야. 시를 배우고 싶었거든." - 214쪽

 

그런 조안의 모습에 이오도 영향을 받는다. 이오는 친구 경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나 말이야. 곧 죽는다는 얘기를 듣고 이제껏 하지 않았던 것들을 마구 하면서 살아 봤거든? 근데 아무 문제가 없었어. 전혀. 지금도 그렇잖아."
"그래도 그렇게 사는 건 너무 불안한 일이야."
"어떻게 살아도 불안해지지 않을 수는 없어. 그렇다면 더더욱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길이 맞는 거 같아. 너한테 강요하는 게 아니야. 난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야. 그냥 각자 맞다고 생가가하는 대로 살면 되는 거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하고는 이런 대화를 한번쯤 하고 싶었어." - 249~250쪽  

 

평균 수명이 100세라지만 C도 병들고 아프고 사고가 나기도 할 것이다. 오늘날 N이 없을 뿐, 청정복을 입지 않았을 뿐, 우리는 모두 C이다 미세먼지로 시작한 이 이야기가 말하려는 것은 결국 이것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주인, 조안」 드라마는 이미 배우도 다 결정되었다. 이오 역에 최성은, 조안 역에 김보라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소설에 이오는 남자인데 드라마는 여자로, 퀴어 청춘물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소설에서도 이오의 성별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드라마 속 미세먼지 세상은, 이오와 조안은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해본다.


책 제목 : 미세먼지
부제 : 안전가옥 앤솔로지 3
분야 : 소설
소분야 : 한국소설
지은이 : 류연웅(놀러 오세요, 지구대 축제), 김청귤(서대전 네거리역 미세먼지 청정구역), 박대겸(미세먼지 살인사건), 김효인(우주인, 조안), 조예은(먼지의 신)
출판사 : 안전가옥
쪽수 : 318쪽
출간일 : 2019년 11월 11일
ISBN : 979119017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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