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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 리뷰어(북딩 3기) 활동으로 책을 무료로 제공받았음을 미리 밝힙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로 놀 때 소설 습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다이어트’를 소재로 소설을 썼었다. 한 여자의 세 번에 걸친 다이어트 일화를 적은 것이었다. 모두 여자가 원해서 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타인의 강요나 비난, 또는 성희롱으로 인한 다이어트였다. 그 소설을 쓰면서는 내가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그것을 썼는지 나조차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래서 주제로 똑바로 향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웃픈 일화처럼 묘사했다가 성 차별 얘기를 썼다가 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여성이 겪은 잘못된 대우에 문제 의식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주제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다. 그러면서 현재 문단에서도 그런 시각을 가진 분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때로부터 한두 해가 지났을 때,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되었다. 『82년생 김지영』을 보며 내가 겪어서 느끼고는 있었지만 소설로는 그려내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게 되었다.

 

그 뒤에도 여러 작품 속에서 내가 겪어봤던 일들이 그려졌다. 『현남 오빠에게』에서도 그랬고 이번 책 『새벽의 방문자들』에서도 그랬다. 『새벽의 방문자들』에 수록된 작품은 총 6작품인데, 장류진 작가의 「새벽의 방문자들」이 가장 먼저 실려 있다.

 

새벽의 방문자들

 

제목에서부터 어떤 내용일지 감이 왔다. 그러면서 불안했다. 내가 생각한 내용일까봐. 그런 내용은 부디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소설이라고 썼어?’라는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과거 나에게도 새벽에 울리는 낯선 이의 발소리, 초인종 소리 때문에 너무도 무서웠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장류진, 「새벽의 방문자들」 줄거리

 

「새벽의 방문자들」에서는 주인공의 오피스텔에 새벽마다 낯선 남자들이 초인종을 누른다.

별일 아니라고 주문을 거는 듯한 태연함, 남에게 들키기 싫은 일을 할 때의 부끄러움, 돌연 술이 확 깨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의 주저함, 그러면서도 어쨌든 곧 벌어지게 될 눈먼 섹스에 대한 설렘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얼굴들. - p.31

 

주인공은 그들이 자신의 오피스텔을 성 매매 업소로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구조를 가진 반대쪽 오피스텔 같은 호수에 갈 사람들이 잘못 오는 것이라고 말이다. 새벽의 방문자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관찰하는데 어느 날에는 헤어진 전 남자친구 김도 새벽의 방문자로 찾아온다. 그러나 용기 내 찾아간 B동 1205호 역시도 평범한 여자가 살고 있을 뿐이고 그녀 역시 새벽의 방문자들로 고통받고 있었다. 주인공은 결국 이사를 간다. 남자들의 사진만 남겨 둔 채.

 

 

마치며

이 책 홍보 문구에, “페미니즘 소설은 이제 하나의 장르다. 픽션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여섯 편의 이야기!”라는 문장이 있다. 책을 읽으며 그 홍보 문구가 싫었다. 괜히 미웠다. 어느 성별의 독자가 읽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어?”라고 했으면 좋겠다. “이건 소설일 뿐이지 뭐.” 했으면 좋겠다. “나도 비슷한 일 겪은 적 있어.”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 사회가 하루빨리 오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작가 노트 일부 구절을 남긴다.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나는 내가 실제로 알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을 떠올렸다. 한때 나에게 ‘선배’ 소리를 들었던 그들은 한 집안의 똘똘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교를 좋업해 ‘좋은’ 직장에 다니고, 결혼 시장에서도 ‘멀쩡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결혼했고, 일부는 아이도 있다. 동시에 그들은 성매매 경험이 다수 있다. 그 사실이 딱히 비밀도 아닌 것이, 본인의 입으로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중략) 이쯤이면 앞 문단에서 언급했던 내가 소설가로서 봉착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뭔지 눈치챈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이들의 실제 외양을 그대로 묘사했다. 그러자 묘사 자체도 술술 풀리고 이상한 마음의 짐도 덜어졌다. 소설이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에이, 나 소설가잖아요. 이것도 다 소설이에요. 원래 소설가는 작가 노트도 소설로 쓰는데? 몰랐어요?”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응, 이거 네 얘기야.
이 글을 읽고 있는 너, 바로 당신. - p.41~43

책 제목 : 새벽의 방문자들
분야 : 소설
소분야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 장류진, 하유지, 정지향, 박민정, 김현, 김현진
출판사 : 다산책방
쪽수 : 284쪽
출간일 : 2019년 07월 05일 
ISBN : 979113062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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