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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소설이 재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이미 드라마 제작 중인 『보건교사 안은영』부터 『피프티 피플』,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목소리를 드릴게요』까지 추천도서로 한 번 이상 들은 제목이었다. 심지어 『지구에서 한아뿐』은 출간되었을 때 찜도서에 넣어두고 찜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었다.

 

정세랑, 『지구에서 한아뿐』

 

『지구에서 한아뿐』 줄거리를 한 줄로 말하자면 '한아와 경민의 사랑 이야기'이다. 작가인 정세랑도 말했듯, '다디단 이야기(224쪽)'인 로맨스 소설이다. 남자친구 경민의 정체가 이 소설의 핵심이자 SF 로맨스로 만들어주는 장치인데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 포스팅을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이하 스포 있음)

 

소설 『지구에서 한아뿐』 경민

한아와 경민은 11년 된 커플이다. 한아는 버려질 뻔한 옷을 다시 새 옷으로 리폼해주는 옷 수선집을 운영한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한아와는 달리, 경민은 언제나 소년 같은 사람이었다. 한아는 경민과 여름 휴가를 함께 보내고 싶었지만 경민은 유성우를 보겠다며 캐나다 밴쿠버로 떠난다.

 

경민이 캐나다 밴쿠버에 가 있는 동안 그 근교에 소형 운석이 떨어졌다는 뉴스가 뜬다. 한아는 경민에게 연락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고 경민의 귀국 전날에야 연락이 닿는다. 그런데 돌아온 경민이 어딘가 이상하다. 먹지 않던 가지 무침을 먹고 평소와는 다르게 집까지 데려다 준다. 게다가 이상한 장면까지 목격한다.

 

한아는 경민이 분리수거를 마치면 놀래켜줘야지 싶어 더 전복대 뒤로 몸을 숨겼다.
 "이건 플라스틱이야, 페트야?"
 웅크리고 있던 경민이 혼잣말을 하며 망설였다. 그러더니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대충 숨은 한아를 발견 못한 채, 입을 벌렸다.
경민의 입에서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강렬한 빛줄기가 뿜어져나왔다. 그 빛은 경민의 손에 들린 일회용 음료수 병을 핥았다. 순간이었지만 레어저처럼 강렬했다.
 "음, 페트구나." - 42~43쪽

 

(스포 있음)

 

 

 

돌아온 경민은 경민이 아니라 외계인이었다. 외계에서 망원경으로 한아를 지켜보다 사랑에 빠져 지구로 온 외계인.

 

"나도 저렇게 여기에 왔어. 2만 광년을, 너와 있기 위해 왔어."
한아는 울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실패했다.
"경민이······ 진짜 경민이 어딨어?"
"경민씨의 이름, 얼굴, 정보······ 특히 너와 관련된 정보들과 내 우주 자유 여행권을 서로 바꿨어. 완전히 자발적인 과정이었고 경민씨를 결코 해치지 않았어. 동의하에 바꾼 거야. 지금쯤은 은하계 바깥을 탐험하고 있을 거야. (중략)" - 93~94쪽

 

경민의 정체가 밝혀지면서부터 『지구에서 한아뿐』 초반에 그려진 미스테리한 분위기가 달달한 분위기로 전환된다. 

 

"그리고 반해버린 거지. 그거 알아? 내가 너한테 반하는 바람에, 우리 별 전체가 네 꿈을 꿨던 거? 하지만 첫번째로 널 보고 널 생각한 건 나였기 때문에 내가 온거야." - 101쪽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도민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이미지 출처 : SBS 별에서 온 그대 공식 홈페이지)

외계인 남자친구로 떠오른 것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김수현 분)이었다. 외계에서 온 것도 지구인에 비해 수명이 훨씬 긴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별에서 온 그대》 도민준이 『지구에서 한아뿐』 경민처럼 사랑에 빠져 지구로 온 것은 아니다. 지구로 온 것이 먼저이고 사고로 자신의 별로 돌아가지 못한 채 머문 상태였다.

 

경민은 도민준처럼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한다거나 순간 이동하는 등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연필심을 어금니로 우걱우걱 부숴 다이아몬드 원석으로 만들어내는(60쪽) 정도? 도민준이 강남 땅 부자인 것에 비하면 경민은 굉장히 약소한 수준으로, 빌라 한 채 건물주이다. 심지어 지구로 오면서 빚을 많이 져서 여러 심부름을 처리해주어야 한다. 한아의 말처럼 자본주의적인 우주에, 지구랑 다를 것도 없다(158쪽).

 

경민의 심부름을 보는 것도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 심해에 살고 있는 망명객들에게 고향의 내란이 종식되었다는 소식을 알리러 가야(148쪽) 한다거나 우주의 고래형 지능체들의 의뢰를 받아 지구의 고래를 도와주러 가야 하는 일(151~152쪽) 등이다.

 

영화 《시티 오브 엔젤》 세스

영화 《시티 오브 엔젤》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고 사랑을 택했다는 점에서는 영화 《시티 오브 엔젤》의 세스(니콜라스 케이지 분)가 떠올랐다. 영화 《시티 오브 엔젤》에서 세스는 천사다. 그런데 의사인 메기(멕 라이언 분)에게 반해 인간이 되려고 한다. 물론 세스가 포기한 것은 천사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이었고, 경민이 포기한 것은 우주 자유 여행권이었을 뿐이지만.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끝이 난 영화 《시티 오브 엔젤》과 달리, 소설 『지구에서 한아뿐』은 끝까지 달달한 로맨스가 펼쳐진다. 그렇다. 『지구에서 한아뿐』은 로맨스 소설이다. 나는 로맨스보다 SF에 초점을 두고 이 책을 펼쳤다. 그래서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잘못된 안경을 끼고 책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비닐봉지들을 모아 꽃모양으로 접어 정리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역시 보고 싶네. 보고 싶잖아.
그렇지만 뭔가 달랐다. 원래의 경민을 보냈을 때의 그런 몸이 간질간질하고 신경이 쏠리고 불안해지는 보고 싶음이 아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심해를 헤매고 있어도 이어져 있는 보고 싶음이었다.
기다리는 게 즐거울 수도 있구나. 이건 또 새로운데? 한아는 계단에 앉아 생각했다. - 151쪽

"널."
그러나 한아는 마땅한 동사나 형용사를 찾지 못했다.
"······너야."
언제나 너야. 널 만나기 전에도 너였어. 자연스레 전이된 마음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틀렸어. 이건 아주 온전하고 새롭고 다른 거야. 그러니까 너야. 앞으로도 영원히 너일거야······ 한아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채 말하지 못했고 물론 경민은 그럼에도 모두 알아들었다. - 196~197쪽

 

포스팅을 정리하며 SF가 아니라 로맨스에 집중해서 다시 봤다. 정말 단, 다디단 로맨스 소설이다.


책 제목 : 지구에서 한아뿐
부제 : 정세랑 장편소설
분야 : 소설
소분야 : 로맨스소설
지은이 : 정세랑
출판사 : 난다
쪽수 : 228쪽
출간일 : 2019년 07월 31일
ISBN : 9791188862290

 

제목 : 별에서 온 그대
장르 : 드라마 (수목, 21부작)
방송일시 : 2013.12.18 ~ 2014.2.27
제작 : 박지은(극본), 장태유(연출)
출연 : 전지현, 김수현, 박해진, 유인나, 신성록
소개 : 1609년 (광해 1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비행물체 출몰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가의 엉뚱하고 황당한 상상이 더해진 팩션 로맨스 드라마

 

영화제목 : 시티 오브 엔젤
영문제목 : City of Angels
장르 : 로맨스/멜로/판타지
감독 : 브래드 실버링
출연 : 니콜라스 케이지, 멕 라이언, 안드레 브라우퍼, 데니스 프란츠
상영시간 : 114분
등급 : 15세이상관람가
개봉일 : 1998.07.17
영화소개 : 천사 세스(니콜라스 케이지)와 카지엘(안드레 브로거)은 로스 엔젤레스 하늘을 떠돌며 죽은 자의 영혼을 하늘 나라로 안내한다. 어느 날 세스는 심장 전문 외과의인 메기(멕 라이언)가 죽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평소에도 지상의 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세스는 메기를 위로하려고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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