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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우리 동네에는 선녀님이 많았다. 자라면서 알게 되었다. 그 선녀님은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가난한 동네에 선녀님이 많이 산다는 것도. 인터넷서점을 둘러보다가 『명리심리학』을 만났을 때 생각했다. 아, 요즘 정말 가난한 사회가 되었구나. 마음이 가난한 사회가 되었구나. 심리학에서도 명리학을 말하는 사회가 되었구나.

 

『명리심리학』의 저자 양창순은 정신과 의사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미 여러 책에서 심리학 이야기를 들려준 저자가 이번에 가져온 주제가 명리학과 심리학이라 무척 놀랐다. 명리학? 제가 아는 그 사주팔자의 명리학 말하는 거죠? 속으로 그렇게 물었다.

 

양창순, 『명리심리학』

 

정신과 의사가 왜 명리학을 공부했을까

저자는 왜 명리학을 공부하게 되었을까. 정신과 의사인 저자를 앞에 두고도 사주니 팔자니, 어디서 용한 누구한테 들었다느니 하고 늘어놓는 환자를 보면서 명리학이 궁금해졌다고 한다. 나였다면 '아니, 의사인 내 말을 들으셔야죠.'라며 정색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저자가 명리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명리학이 동양의 성격학이라는 등 명리학 자체가 가진 매력도 있겠지만 환자들이 정신의학과 명리학을 함께 설명해줄 때 그 결과를 더 잘 받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환자들이 정신의학과 명리학을 종합해 설명할 때 더 잘 수긍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 번째 이유는 정신의학적으로 자신을 아는 것보다 주역과 명리학으로 아는 것이 덜 아프기 때문이다. 나의 임상 경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알고 싶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욕구가 더 크다. 그런 심리는 물론 나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정신의학적 검사는 분석적인 서양의 의학이기 때문에 일단 날카롭고 아픈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스스로에 대해 어느 정도 깊이 있는 통찰력을 지닌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중략)

나의 임상 경험에서 주역과 명리학이 환영받는 두 번째 이유는 이를 통해 누구나 자신에 대해 좀 더 통합적인 이미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세 번째 이유는 명리학과 정신의학을 접목할 때 나의 인간관계 패턴에 대해 좀 더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네 번째 이유는 명리학적 분석을 통하면 내가 타고난 잠재력을 좀 더 잘 알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 12~14쪽

 

정신의학과 명리학으로 살펴보는 나

『명리심리학』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본질은 '심리학' 책이다. '명리학'은 도구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명리학을 바탕으로 풀어낸 성격 심리학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1장에서 저자가 왜 명리학을 공부하게 되었는지, 명리학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담았다면, 2장과 3장에서는 '성격'에 초점을 맞추되, 정신의학적 설명과 명리학적 설명을 담았다. 마지막 4장은 앞에서 배운 내용을 정리하며 여러 사례를 담은 부분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명리학은 내게 놀라운 경험을 안겨주었다. 그 학문 자체가 ‘동양의 성격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 옛날 그리스의 철학자가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성격이 곧 운명”이라고. 그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실감하며 살아온 나로서는 더욱 명리학에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 7쪽

 

자신의 사주를 살펴보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이 책만으로 사주풀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의 흐름을 보는 방법은 다루지 않는다고도 명시했으며, 책에 모든 풀이가 담겨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에 담긴 기본 정보로도 '나'를 살펴보는 데에는 충분했다. 물론 무료 사이트(또는 어플)에서 내 생년월일을 입력해, 나의 오행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명리학을 통해 자신을 아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큰 틀, 프레임을 아는 것이고, 정신의학적으로 자신을 아는 것은 그 프레임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86쪽

 

'나를 안다'는 것은 결국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를 '수용'이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고통과 괴로움은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에서 오고, 명리학은 그런 것을 수용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명리학은 우리로 하여금 내게 일어난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게 해준다. 흔히 ‘수용’이라고 하면 마치 수동적인 자세로 더 이상 노력을 하지 않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수용이란 과거의 내 모습이 어찌 됐든 그것은 이미 흘러간 것이고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52~53쪽

그런 의미에서 명리학은 수용의 학문이다. 수용하면 마음이 편하다. 그게 나인데 어쩌라고 싶은 마음도 생겨나면서 이상하게 그 다음에는 좀 더 자신을 발전시키고 성장시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중략) 결국 남에게 일어나는 힘든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게 인생이라는 것, 단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확률적으로 나에게 일어난 것뿐임을 받아들인다면 삶의 무게를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 62~63쪽

 

또한, 이를 명리학이 주는 위로라고도 말한다. 내게 견딜 수 없을 만큼 큰 시련이 닥쳤을 때, 그것이 내 탓만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위로.

 

명리학으로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그중 하나가 내 성격적인 결함들이 어쩌면 모두 다 내가 잘못해서 생긴 것만은 아니라는 걸 비로소 이해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요소들을 처음부터 타고난 이상, 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중략) 그런 것처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서서히 시작해 심리적으로도 자신을 점차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치료효과가 훨씬 더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 109~110쪽

 

움직일 운, 목숨 명; 운명의 아이러니

명리학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결코 바뀔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운명학이라는 말 자체에도 고정불변의 의미는 없다.

 

명리학은 일명 ‘운명학'이라고 한다. ‘사주추명학(四柱 推命學)’이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사주를 가지고 하늘에서 받은 자신의 삶의 이치를 추론한다는 뜻이다. 운명이라는 한자어도 알고 보면 매우 흥미롭다. ‘움직일 운(運)’에 ‘목숨 명(命)’으로 운명 역시 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61쪽

 

앞에서 언급했듯, 이 책은 '성격'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명리학이든 정신의학이든 그것은 도구일 뿐이다. 내가 가진 성격을 바로 보아야 내 운명을 더 좋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고 하는데 이는 정말 맞는 말이다. 위기의 순간에 그가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사례는 너무도 많다. - 82쪽

흔히 나는 “사주가 좋으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물론 대답은 ‘아니다’이다. 내가 소위 말하는 ‘금수저’로 태어났다고 해도 그것을 닦는 일을 게을리하거나 함부로 굴리면 어느 순간 빛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보다는 내가 운명으로부터 받은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잘 지키겠다는 마음, 갈고닦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운명도 내 편이 되어줄 것이다. - 261쪽

 

육십갑자 중에 내가 가진 것은 겨우 여덟 글자(팔자)뿐이지만, 글자가 많지 않다고 해서, 좋아하는 글자가 없다고 해서 울 필요는 없다. 저자가 말한 대로 수용하고 인정하자.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이 달라지면 세상도 달라질 것이다.

 

상담을 하고 나서 자기 문제를 깨닫고 마음의 평화를 찾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가 달라지니 세상이 달리 보이더라.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내가 정말 대견스럽다.” 나는 그렇게 되기까지 정신의학이 누군가의 마음에 일어나는 치열한 갈등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담당한다면, 명리학은 담담하게 위로와 희망을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 289쪽

 

계속 말하건대, 이 책은 심리학 책이다. 특히 성격 심리학 책이다. 명리학에 거부감이 있거나 명리학을 깊이 공부하려는 사람이라면 권하지 않는다. 마음이 심란할 때, 눈앞이 캄캄할 때, 나도 모르게 사주나 보러 갈까? 생각이 든 적 있다면, 편하게 읽을 교양 심리학 책을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책 제목 : 명리심리학
부제 : 사는 게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분야 : 인문
소분야 : 교양심리
지은이 : 양창순
출판사 : 다산북스
쪽수 : 308쪽
출간일 : 2020년 02월 25일
ISBN : 9791130628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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