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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출판사 책을 좋아한다. 한 손에 들어도 무리 없는 작은 크기와 가벼운 종이, 가볍게 읽지만 생각할 거리, 공부할 거리가 많은 주제. 유유에서 신간이 나오면 일단 책 소개를 훑어본다. 이번 책, 『열 문장 쓰는 법』도 그래서 알게 되었다.

 

『열 문장 쓰는 법』은 이미 몇 번 책으로 뵌 적 있는 저자 김정선 님의 신간. 교정자로 일하는 저자의 책에는 잘 쓴 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힌트가 곳곳에 있었다(지금은 외주 교정은 그만두시고 저자로 사신다고 한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읽으며 내 글은 어떤가 고민하고 잘 다듬은 글을 살폈다. 『동사의 맛』을 읽으면서는 우리말 동사를 어떻게 활용해 제대로 된 맛을 내는지 엿보았다.

 

이전 책을 읽으면서는 글쓰기 책이라기보다는 글 다듬기 책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책은 정말로 '글쓰기' 책이다. 글을 매끄럽고 깔끔하게 쓰는 기술에 초점을 맞춘 책 아니다.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 첫 문장부터 막혀서 막막한 사람에게 일단 글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에 더 중점을 두었다.

 

제목에 들어간 '열 문장'은 열 개의 문장을 뜻하기도 하고, 열거된 문장을 가리키기도 하면서, 동시에 한 편의 글을 이루는 여러 개의 문장을 말하기도 합니다. 단지 한 문장을 제대로 쓰는 게 어려워서 글쓰기가 힘들다고 고민하는 건 아니니까요. 우리가 바라는 건 최소한 열 문장 정도는 큰 문제 없이 써 내려가는 거잖아요. 매번 열 문장 정도만 무리 없이 써 내려갈 수 있다면 한 편의 글을 쓰는 일도 어렵지 않게 여겨질 테니까요. 그다음은 각자가 알아서 하면 되는 거고요. - 12쪽

 

한 문장을 길게 써 보자

그동안 읽은 여러 글쓰기 책과 가장 큰 차이점은 한 문장을 길게 쓰라고 하는 점이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길게'란 '짧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일단 계속 쓰라'는 것에 가깝다. 짧게 쓰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이미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는 말이겠지만 글을 써본 적조차 없는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인 말이다. 자기소개서에 분량 채우는 것도 버거운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뭐를 써야 길게 쓰든 짧게 쓰든 하지. 

 

한 문장을 길게 써 보시라고 한 이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써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긴 문장을 끊지 않고 이어서 쓰면 무엇보다 한 문장 써 놓고 다음 문장엔 뭘 써야 할지 막막해서 글을 이어 나가지 못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그러니까 온전한 '나만의 것'을 일단은 방해받지 않고 써 나갈 수 있는 거죠.
(중략)
둘째는, 문장 쓰는 연습이 되기 때문입니다. 짧은 문장을 나열하기만 해서는 문장을 연이어 쓰면서 내용을 이어 가는 훈련이 되지 않죠.

 

나 역시도 글쓰기로 조언해달라고 할 때, '일단 많이 쓰라'고 한 적이 있다. 일단 많이 써야 불필요한 내용을 가지치기하기 쉽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여러 글쓰기 책에서 그랬던 것처럼 문장은 짧은 문장으로 적길 권유했다. 『열 문장 쓰는 법』을 읽으니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짧게 적으려고 신경 쓰다 보면 분량을 채우지 못하고, 결국 내 조언은 반쪽짜리가 되었단 사실을.

 

말로는 잘해도 글로는 막히는 것이 당연하다

말과 글은 다르다. 같은 내용을 말로 설명할 때와 글로 설명할 때는 차이가 크다. 말은 청산유수인 사람이 무조건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말을 쓰는 빈도와 글을 쓰는 빈도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글도 어쩌면 외국어처럼, 일상에서 자꾸 써야 실력이 느는 언어이지 않을까.

 

이런 상황을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한다면, 우리가 지금 글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맞겠네요. 왜냐하면 어릴 때 말하기를 익히기 위해 감수했던, 그 셀 수조차 없는 반복 훈련을 글쓰기를 위해 해 본 적은 없으니 말이죠. - 43쪽

 

그러나 우리는 써야만 하는 사회에 산다

얼마 전 시청한, EBS 다큐프라임 '다시 학교' 10부 '교과서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에 이런 장면이 나왔다. 엄마가 아이에게, 나중에 회사에 가서도 글을 읽는 일은 많다고, 서류도 많고 간단한 업무 전달에도 이메일로 적은 글이라고 꾸짖었다. 그 장면이 무척 공감이 갔다. 그 상황을 '읽는 것'에서 '쓰는 것'으로 바꿔 생각해보자.

 

우리는 써야만 하는 사회에 산다. 기획서며 보고서며 각종 서류는 모두 글이다. 그것을 써야 하는 것도 나다. 이메일도 정말 자주 쓴다. 전화보다 많이 썼다. 업무 지시 사항도 메일로 전달하고 전달받았다. 모두 글이었다. SNS는 또 어떤가. 사진 중심이 인스타그램만 하더라도 사진 아래에 글이 들어간다.

 

그랬던 것이 이젠 거꾸로 돼 버렸죠. 글씨 쓸 일이 없어진 대신 글을 쓸 일이 많아진 겁니다. 예전에 거리 곳곳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글씨 쓰기 학원이 요즘은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강좌로 대체되었고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예전에 글씨를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보편화되었던 것은 글씨를 잘 쓰게 되면 얻는 게 많았기 때문이었듯이, 요즘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보편화된 것 또한 그로 인해 이득을 볼 일이 많기 때문이겠죠. 이게 제가 내린 나름의 진단입니다.
저나 여러분은 글씨가 아닌 글을 써야만 하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소리를 종종 듣지만, 책에 담긴 글을 읽는 것만이 독서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지금이야말로 한국 사람이 다른 사람이 쓴 한국어 문장을 강박적으로 읽고, 자신 또한 한국어 문장을 강박적으로 써서 어딘가에 보내거나 올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58~59쪽

 

저자의 말처럼 '망할 놈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60쪽)'에 우리는 글을 써야 한다. 이왕 쓸 거면 잘 쓰면 더더욱 좋지 않을까. 처음부터 완벽한 문장을 뱉어낼 수 있다는 기대는 버리자. 저자가 알려주는 대로, 한 문장을 길게 써보는 것으로 시작하자. 『열 문장 쓰는 법』을 따라 글을 쓰다 보면 '분명한 의미를 갖는 짧은 문장으로 '나만의 것'을 '모두의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한 글(146쪽)'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첫 문장부터 멍 때린 적 있었다면, 몇 문장 쓰다가 머리가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든 적 있었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되겠다. 그런 분들께 『열 문장 쓰는 법』을 권한다. 


김정선, 열 문장 쓰는 법

책 제목 : 열 문장 쓰는 법
분야 : 인문
소분야 : 글쓰기
지은이 : 김정선
출판사 : 유유
쪽수 : 160쪽
출간일 : 2020년 03월 04일 
ISBN : 979118968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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