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따뜻한 가슴에 차가운 머리를 결합시켜야, 다시 말해

이타적 행위에 데이터와 이성을 적용할 때라야 비소로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때, 자기계발서 특히나 처세술과 관련된 내용인 줄 알았다. 그러나 책을 막상 펼쳐 보니 기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기부를 경제학의 관점에서 풀어냈다고나 할까. 선의와 열정에 이끌려, 감정적으로 접근해 기부하는 행위를 '경솔한 이타주의'라고 말한다. 우리는 내 돈을 내어 주면서, 잘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왜 따지지 않는가? 저자는 그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해 이타주의적 행동을 수치화한다.

 

본문에서는 '냉정한'이라는 표현보다 '효율적'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이지만 제목을 참 잘 지었다. "따뜻한 가슴에 차가운 머리를 결합시켜야, 다시 말해 이타적 행위에 데이터와 이성을 적용할 때라야 비로소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라는 저자의 주장을 가장 잘 드러낸 제목이다. '효율적 이타주의자'였다면 독자의 시선을 끌기에도 조금 부족하지 싶다.

 

사실 앞부분에서는 저자의 주장이 불편했다. 그동안 내가 해온 선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여러 가치 중에서 우선순위를 따지자는 것인가. 이타적 행동을 경제적인 논리로 풀어내려고 하면 효율성은 낮지만 꼭 필요한 활동은 가치가 없으니 하지 말자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을 잘못 읽어서 생겨난 오해였다.

 

효율적 이타주의라는 용어는 말 그대로 '효율'과 '이타주의'가 결합된 표현이다. 각각의 의미부터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이타주의'는 '타인의 삶을 개선시킨다'는 단순한 의미를 나타낸다. 이타주의가 희생을 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 생각은 다르다. 남을 도우면서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도 이타주의다. '효율'은 주어진 자원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둔다는 의미다. 중요한 건 효율적 이타주의가 ‘그만저만한’ 선행을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힘닿는 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어떤 선행이 효율적인지 판단하려면 착한 일에도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남을 돕는 ‘특정’ 방식이 ‘소용없다’고 주장하거나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어떤 방식이 가장 좋은지 따져 보고 그것부터 먼저 실천하자는 말이다.

 

그렇다. 저자는 어느 방법이 좋다, 나쁘다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왕 선행을 할 것이라면 가장 효과적으로 할 방법을 따져 보자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남을 도울 때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될 방법으로 다음 5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1.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혜택이 돌아가는가?
2. 이것이 최선의 방법인가?
3. 방치되고 있는 분야는 없는가?
4.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5.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고 성공했을 때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결국 이 책의 내용은 위 5가지 질문에 대한 근거와 예시다. 저자가 말하는 '질적인 차이'에는 다수의 행복이라는 전제가 깔린 듯하다. 맹인 한 사람이 눈을 뜨게 할 돈으로 100명의 실명 위협을 막을 수 있다면 후자에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다수에게 이익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QALY(Quality-Adjusted Life Year)라는 지표를 바탕으로 각각에게 돌아갈 혜택을 측정한 뒤 비교해 내린 결론이다. 이와 같은 설명은 "우리나라에도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은데 왜 머나먼 아프리카 기아들을 돕는 거냐?"라고 따지는 사람에게 반박할 때 요긴하게 쓰이겠다.

 

저자는 특히, 기부를 강조한다. 그러나 기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부하라고 말하는 책은 아니다. 기부의 동기 부여를 위한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책에서는 이미 기부를 하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말한다고 느껴졌다. 기부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선행을 하려는 생각이 있거나 봉사 등 다른 선행 활동을 하고 있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중 인상 깊은 내용은 공정무역 제품 구매 등 윤리적 소비와 관련한 대목이다. 저자는 윤리적 소비를 할 바에야 차라리 기부를 하라고 한다. 공정무역을 허가받을 정도라면 상대적으로 괜찮은 수준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보다 최극빈 상태라면 허가조차 받지 못했을 텐데 차라리 기부를 해서 그들을 돕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종종 공정무역 제품을 접했던 내게는 생각이 전환된 주장이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기부를 하면 당신의 돈을 가장 효율적인 사업에만 집중시킬 수 있다. '최선'의 활동과 그럭저럭 좋은 활동의 결과가 다르다는 점만 봐도 효율적인 기부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윤리적 상품을 더 많이 구입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쓰는 건 목표를 정확히 공략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런데 윤리적 소비와 기부의 차이는 이게 다가 아니다. 윤리적 소비 물결이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할 만한 까닭이 있다. 바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도덕적 허가(moral licensing)’ 효과 때문이다. 이는 착한 일을 한 번 하고 나면 이후에 선행을 덜 실천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하는 경향을 말한다. (중략) 도덕적 허가 효과는 사람들이 실제로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착해 보이는 것, 착한 행동을 했다고 인식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보여 준다. 에너지절약 전구를 구입하는 행위로 ‘내 몫을 했다’고 생각하면 조금 뒤에 잔돈 몇 푼을 훔쳐도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 책은 한 편의 글 같다. 312쪽이나 되는 글. '서론-본론-결론'을 충실히 갖춘, 주장하는 글의 전형적인 모습을 띤다. '머리말'은 이 글의 서론으로 어떤 주장을 펼칠지 안내하고, 본문인 각 장(Chapter)은 주장과 근거를 논리적으로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으로 말하고 싶었던 바를 5쪽 분량으로 정리했는데, 심지어 "결론"이라고 떡하니 써 놓았다.

 

효율적으로 남을 돕고 싶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1.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습관을 들여라.

2. 효율적 이타주의를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라.

3. 효율적 이타주의 커뮤니티에 참여하라.

4. 효율적 이타주의를 주제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라.

 

효율적으로 남을 돕고 싶다면 이렇게 해라. 그 한마디를 300쪽에 걸쳐 풀어 놓은 셈이다. (부록에는 책에서 던진 질문들을 정리까지 해 주었는데 그 부분만 읽어도 책의 내용을 다 본 것과 같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따져야 한다.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일이니 너무 자로 잰 듯이, 칼로 자르듯이 따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만약 기부를 하고 있다면, 해당 단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비용 효율성이 높은지, 사업이 실효성이 있는지(객관적으로 검증되었는지), 사업이 제대로 실행되는지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그리고 기준에 맞지 않는 단체라면 과감히 다른 단체를 찾아야 한다.

 

우리 이제, "냉정한 이타주의자"가 되자.

 


책 제목 : 냉정한 이타주의자
분야 : 인문
소분야 : 인문교양
지은이 : 윌리엄 맥어스킬
출판사 : 부키
쪽수 : 312쪽
출간일 : 2017년 02월 28일
ISBN : 9788960515833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를 꾸욱 눌러 주세요. 저에게 큰 힘이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