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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보통이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린 이유.

'보통 사람들'의 보통의 행복한 순간들을 너무 늦지 않게 전해 주고 싶어서 아니었을까.

 

 

저자 김보통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만자>라는 웹툰 덕분이었다. 우리 집에도 일명 '아만자'가 있었기 때문에 눈물 콧물 있는 대로 쏟으면서 웹툰을 봤다. 그러다 한 인터뷰를 보았다. 저자가 '암'이라는 주제로 이 웹툰을 그리게 된 계기를 알게 되었다. 오늘내일하는 아버지의 병실 대신 회식 자리에서 눈물을 쏟아야 했던 일화를... 그래서 이 책이 몹시 궁금했다.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시던 대기업에 들어가고, 회사를 그만두는 과정부터 퇴사 후 도서관을 만들겠다며 퇴직금을 써버리는 이야기까지. 이처럼 솔직한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그러다 3부에 이르자 자꾸만 내 생각이 났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인데, 내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보통이. 요즘 그림은 그리니?"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다.

선생님은 쭈욱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지난 시간 동안 계속, 내가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길 내내 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설마, 그랬던 것일까? 그래서 길지 않지만, 절대 짧지도 않은 시간이 흘러 만나게 된 오늘, 가장 먼저 내게 묻고 싶었던 것이, 가장 먼저 나온 말이, 너는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느냐는 물음인 걸까? 진짜?

(중략)

선생님은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마치 예언자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그림을 그려야 해."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어색한 표정으로 얼버무렸다.

 

마치 내 얘기 같았다. 그림에서 글로 바꾼다면 말이다. 나도 저자처럼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다. 내가 글을 쓰며 빛날 수 있게 도와주셨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글을 쓸 기회도 많았고 글 덕분에 칭찬도 많이 받았다.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다. 만약 지금 선생님을 다시 뵙게 되면 선생님은 저자의 선생님처럼 나에게 "넌 글을 써야 해."라고 말해주실 것 같다. 이미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요즘 글은 쓰고 있니?"라는 말은 확실히 들은 기억이 있다. 저자처럼 나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왜 나의 글쓰기는 중학생이던 그 시절만도 못한 걸까.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만둔 것이 대충 열여섯 살 무렵. 그 이후 17년이 흘렀다. 그림을 그리며 살았던 시간보다 그림을 그리지 않은 채 살아온 시간이 더 긴 셈이다. 평생 한 번도 그림을 그린 적 없는 중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간단한 것조차 그릴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꽤나 긴 시간에 걸쳐 쌓아 올린 재능과 기술이 이렇게 의미 없어지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 도대체 얼마나 더 훌륭하고 멋지고 즐거운 일을 하기 위해 그림을 포기한 것일까.

 

퇴근하는 버스 안이었다. 이미 시간은 11시에 가까운 늦은 밤. 차장 밖으로는 가로등과 자동차 불빛들만 가득한 그 도로 위에서 울컥 눈물이 났다. 엄마의 암 진단 후 수술을 앞둔 어느 날, 버스 안에서 나는 그렇게 눈물을 쏟아냈다. 만약 엄마의 상태가 나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과 함께 든 생각은 의외의 것이었다. 내가 아직 내 글을 쓰지 못했는데 하는 그런 생각...

 

엄마는 내 글을 좋아하신다. 내가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신다. 언젠가 내가 글 쓰는 것으로 크게 성공할 것이라 기대하실지도 모른다. 엄마에게는 내가 벌써 멋진 작가다. 하지만 중학교 이후로 나는 글을 잘 쓰지 않았다. 글을 쓰는 일이 내게는 마치 부채감처럼 남았다. 여전히 글을 가까이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일로서 글을 다룰 뿐, 정작 내 글을 쓰지 않고 있었다. 눈물을 막 쏟아내고 나니, 내가 왜 글을 쓰고 있지 않았나 싶었다.

 

버스에서의 그 일 이후로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엄마의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나도 다시 회사의 쳇바퀴를 돌면서, 또다시 글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버스 안에서의 생각이 다시 든다. 글을 써야겠다. 부채감 때문이 아니라 정말 쓰고 싶어서. 잘 쓰고 싶어서 쓰는 것 말고 쓰는 것이 좋아서 써야겠다.

 

 

너무나 평범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별수 없잖아, 어쩔 수 없잖아, 모두가 이렇게 살잖아 하며 독서는커녕 잠잘 시간도 없이 살지만, 거래처 접대를 위해 밤새 훌라춤을 추며 탬버린을 흔드는 것으로 흘려보내는 우리의 이 삶이 딱 한 번인. 생이면서, 딱 한 번 인생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했다. 그것이 내 예명이 ‘김보통’이 된 이유다.

 

퇴사 이후의 삶이 불행해질지 모른다고 우려와 걱정 섞인 조언을 건네던 이들에게, 바다는 위험하니 다시 수족관으로 돌아가라는 이들에게 저자가 책으로 답을 보냈다. 아직, 불행하지 않다고.

 

 


 

책 제목 :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분야 : 시/에세이
소분야 : 한국에세이
지은이 : 김보통
출판사 : 문학동네
쪽수 : 296쪽
출간일 : 2017년 08월 30일
ISBN : 9788954646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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