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재밌는 영화를 찾았다. 이건 정말 추천해야 한다는 수준은 아니고, 킬링타임(Killing Time, 시간 때우기)용 영화인 것 같긴 하다. 자존감 낮은 주인공이 '나'를 찾아가는 뻔한 전개이지만 로맨틱 코미디 속 클리셰 비틀기로 곳곳에 웃음 포인트가 많았다.
로맨틱 코미디 속 클리셰 비틀기
영화 《어쩌다 로맨스》는 로맨틱 코미디를 싫어하는 주인공 나탈리(레벨 윌슨)가 로맨틱 코미디 속에 빠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어쩌다 로맨스》 자체도 로맨틱 코미디면서, 로맨틱 코미디 속으로 빠지는 설정은 액자형 구조이다. 이런 설정은 《마법에 걸린 사랑》(2008년 개봉, 코미디/로맨스/멜로)을 떠올리게 한다.
《마법에 걸린 사랑》은 동화 속 주인공인 지젤(에이미 아담스)이 뉴욕에 나타나며 벌어진 이야기로며, 동화가 실사로 그려지며 동화 속, 더 정확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온갖 클리셰가 등장한다. 《어쩌다 로맨스》에 로맨틱 코미디를 싫어하는 주인공이 나오듯, 《마법에 걸린 사랑》에도 동화를 믿지 않는 까칠한 남자 로버트(패트릭 뎀시)가 등장한다.
《어쩌다 로맨스》 극 초반 나탈리는 직장 동료이자 절친인 휘트니에게 로맨틱 코미디가 나쁘다고 한참을 말하는데, 이 대사를 귀담아 두자. 로맨틱 코미디 여자 주인공은 실수투성이에 자주 넘어지려 하고, 직장 동료는 철천지원수이며 게이 친구가 있고, 어딜 가나 꽃이 있고 뮤지컬 넘버가 울리며, 결말은 사랑을 찾기 위해 결혼식을 중단시키는 장면이 슬로 모션으로 나온다는 등. 나탈리가 말하는 내용이 나탈리가 빠진 로맨틱 코미디 세상 속에 고스란히 재현되기 때문이다. 로맨틱 코미디 속 진부한 설정을 그대로 따르면서 그것을 꼬집어 내는 유쾌한 비틀기다.
영화 속 영화를 찾는 깨알 재미
어린 나탈리가 보고 있던 영화는 《귀여운 여인》(1990년 개봉, 멜로/로맨스/코미디)이다. 휘트니가 업무 중에 몰래 보고 있던 영화는 《첫 키스만 50번째》(2004년 개봉, 로맨스/멜로).
뿐만 아니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귀에 익숙한 OST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영화가 막 시작되며 흘러나온 노래는 'Pretty Woman(영화 귀여운 여인 OST)'이고, 로맨틱 코미디 세상에 빠진 나탈리가 막 병원에 나와서 듣게 되는 노래는 'A Thousand Miles(영화 화이트 칙스 OST)'이다.
《어쩌다 로맨스》 결말 중심 줄거리(스포 있음)
나탈리는 로맨틱 코미디 세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모든 로맨틱 코미디가 그렇듯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그 사랑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인물 중 가장 남자 주인공에 가까운 건 억만장자 블레이크(리암 헴스워스). 나탈리는 그에게 들이대는데, 들이대는 족족 잘 먹힌다. 결국 블레이크에게 사랑한다는 고백까지 듣게 되지만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 속에서 빠져나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블레이크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가 생각한 나탈리는, '남자 주인공'이 블레이크가 아니라 조쉬인 것이 아닐까 고민에 빠진다. 조쉬는 직장 동료이자 절친으로 서로 가장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휘트니가 나탈리에게 조쉬에게 마음을 좀 열어주라고 할 때도 나탈리는, '그는 내가 아니라 창 밖의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 광고판만 본다'고 말했다. 조쉬에서 소위 철벽을 쳐 왔던 것인데.
블레이크와 함께하면서 나탈리는 계속 조쉬를 생각한다. 하지만 조쉬에게는 이미 다른 여자(=이사벨라, 공원에서 목에 무언가 걸려 괴로워하는 것을 조쉬가 구해줬다)가 생긴 상태였다. 심지어 내일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뒤늦게 사랑을 깨달은 나탈리는 자신이 로맨틱 코미디의 진부한 설정이라고 말한 것처럼, 사랑을 되찾기 위해 결혼식장으로 달려간다, 슬로 모션으로...
그리고 조쉬에게 고백하려는데, 'I love... I love...'에서 다음 말이 도통 나오질 않는다. 그때, 나탈리에게 그동안 '나 자신'의 모습이 필름처럼 스쳐 가고, 그제야 말한다. 'I love me!!'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내가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달은 나탈리는 조쉬가 결혼을 하든 말든 내버려 두고 식장을 빠져나온다. 식장 앞에 놓인 스포츠카를 타고 달려가다 교통사고가 나 정신을 잃는다. 깨어나니 다시 병원. 로맨틱 코미디 세상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현실로 돌아온 나탈리는 직장 동료들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더 이상 참지 않고, 프리젠테이션도 당당하게 해 낸다. 또한, 조쉬에게로 가, 창밖의 모델처럼 예쁘고 몸매 좋은 사람만 찾지 말라고 조언한다. 조쉬는 나탈리를 자신의 자리에 앉아보게 하더니 자신은 나탈리의 자리로 가 앉는다. 사실 조쉬가 보고 있던 것은 창밖의 모델 광고판이 아니라 유리창에 비친 나탈리였던 것.
휘트니는 나탈리에게, 멋진 직업, 사랑하는 남자, 절친(=휘트니) 모두 가진 네가 진짜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 같다고 말해준다. 나탈리는 이제 뮤지컬 넘버만 있으면 되겠다며 답하고, 뮤지컬 넘버처럼 춤과 노래가 펼쳐지며 영화가 끝난다.
함께 보면 좋을 영화, 책
영화 : 아이 필 프리티(I Feel Pretty), 2018년 개봉, 코미디
운동 중 머리를 크게 다친 '르네'가 자신이 예뻐 보이는 착각에 빠지며 벌어지는 이야기. 내가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건 나 자신이라는 《어쩌다 로맨스》의 주제와 결이 비슷하다.
책 : 듀나,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제우미디어, 2019
영화 평론을 쓰는 사람이자 SF 작가인 듀나가 영화 속 클리셰를 정리한 책이다. 책 제목을 보면 로맨틱 코미디를 다룬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읽어볼 만하다.
영화제목 : 어쩌다 로맨스
영문제목 : Isn't It Romantic
장르 : 코미디/판타지/로맨스/멜로
감독 : 토드 스트라우스 슐슨
출연 : 레벨 윌슨, 리암 헴스워스, 애덤 드바인, 프리얀카 초프라
상영시간 : 88분
등급 : 15세이상관람가
넷플릭스 : netflix.com/title/80200642
영화소개 : 로맨스 영화를 믿지 않는 건축가.
머리를 다친 후 깨어보니,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 되어 있다.
아름다운 세상이 악몽과도 같은 그녀. 정녕 해피 엔딩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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