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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그럼 저를 믿고 따라와 보실래요?

그렇게 말을 건다.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턱대고 새로운 분야로 이직하기는 겁이 나고 고민만 늘어가던 차였다. 서점에서 ‘에세이 편집자’가 만든 ‘에세이 책 쓰는 책’을 보았다. 에세이 책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했다. 슬쩍 엿보면 내가 에세이 편집자를 가상체험해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에세이 저자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말이기 때문이어서 그랬을까. 막상 책을 읽다 보니 다른 마음이 자꾸 생겼다. 글을 쓰고 싶다, 에세이를 쓰고 싶다 하는 마음. 이런 마음이 자꾸 드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는 글쟁이가 맞나 보다.

 

예전에는 글을 쓰는 것이 참 좋았는데 언젠가부터 글을 안 쓰게 되었다. 글을 점점 쓰지 않게 된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글 속에서 자꾸 내가 묻어나오는데... 그게 싫었다. 일기장을 들킨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내가 쓰는 글이니 내가 묻어나는 게 당연한데 어린 나의 마음으로는 그게 싫었다. 웹에 글을 올릴 때면 누가 나를 알아볼까 싶어서 쓰고도 비공개로 돌리고 지워버리고 그랬다. 어리석었다, 누가 나를 알아본다고. 글을 잘 쓰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니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이기도 했다. 이게 훗날 나에게 흑역사가 될 것이라 예감했나? 욕심이 많았다, 흑역사 하나쯤은 있어야 제맛인데.

 

그랬던 나라서,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다’에 담긴 내용이 좋았다. “너 그렇게 글 써도 돼. 아니, 그렇게 글을 써야만 해.”라고 말해주었다.

 

‘구체적인 글쓰기’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볼까요? 개인적 취향이긴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에세이란 사적인 스토리가 있으면서 그 안에 크든 작든 깨달음이나 주장이 들어 있는 글입니다.
듣기에는 간단한 것 같지만 막상 써보려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이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드러내는 것은 꺼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는 대신 누가 써도 상관없을, 관념적이고 뻔한 글을 많이들 씁니다. 인생을 즐겨라, 타인의 눈을 신경 쓰지 마라, 지금 우리가 하는 고민은 아주 작은 것이다 등 어디선가 많이 본 글들의 변형 버전을 말이죠. 물론 그중 훌륭한 작품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 이런 이야기에는 힘이 없습니다.

 

그동안 내가 좋았다고 생각한 에세이를 떠올려보니 정말 그랬다.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드러내고 감정을 표현한 글. 나도 그런 글이 좋았다. 나 역시도 그런 글을 좋아했으면서 왜 그렇게 쓰지 않았을까. 어리석고 욕심 많던 내가 조금 한심해졌다. 내 색깔이 묻어날 때면 다른 색으로 덮어버리고 지워 버렸으니, 스케치북이었다면 무채색으로만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니 내 마음에도 (그 누구의 마음에도) 들지 않는 이상한 글이었던 것이고...

 

너무 특별한 것을 찾는 사이 내가 가진 좋은 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한 번만 더 들여다보세요. 남들과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부분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꼼꼼히 관찰하다 보면 분명 자신만의 무엇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믿으세요.

 

글을 써야지 하는 마음과 달리, 쓸 이야깃거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결국 ‘나’에게서 나오는 것인데 나를 드러내는 것조차 피하려고 했으니 쓸 내용이 없는 게 당연했다. 이 사람은 이런 사연이 있으니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잖아.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나에게도 ‘사연’이라는 것이 없을 리 없는데(엄마는 항상 엄마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 책 한 권은 나온다고 하신다), 나를 살펴볼 시도를 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 나를 낮게 평가하고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에세이라는 큰 둘레를 쳤지만 (결국 글을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글쓰기 조언이 많았다. 문장을 되도록 짧게 쓰라는 것이나 적절히 인용하라는 것 등 표현법에 관한 팁들도 있고, 혼자만 쓰고 읽는 에세이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에세이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꿀팁들도 있다.

 

어떤 글의 화자가 더 생생하게 ‘완벽주의자’로 느껴지나요? 완벽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나는 완벽주의자야”라고 말하는 대신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충분히 보여주세요.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독자들이 ‘와, 이 사람 진짜 지독한 완벽주의자구나!’ 하고 느끼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 크게 말하기(Telling) 방식과 보여주기(Showing) 방식이 있다. 저자가 설명한 묘사 방식이 바로 보여주기 방식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옆에서 화자가 시시콜콜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서 독자가 더 능동적으로 글을 읽는다. 전공이 국어니, 이론으로는 잘 알고 있는 내용인데 실제로 글을 쓸 때는 그게 잘 안 된다. 생각나는 내용을 마구 말로 해줘야 될 것 같다. 성미가 급해서 그런 걸까.

 

지금도 글을 쓰며 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머릿속에 뱅글뱅글 도는 내용은 이게 아닌데 싶기도 하고. 대체 뭘 말하려는 거야 싶기도 하고. 그러나 글을 ‘잘’ 쓰려는 욕심은 버릴 생각이다. 항상 욕심만 내다가 혼자 지쳐서 포기해버린 적이 많았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지금 글을 못 쓰는 이유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은 회사를 그만둔 다음에도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이를 무시하고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면 글을 쓰지 못하고 헛되이 보내는 시간만 많아질 뿐입니다.
작가가 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면 적어도 회사에 다니는 동안 글 쓰는 근육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글쓰기 습관이 몸에 붙었을 때 그만두어야 합니다(개인적으로는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고 싶지만요). 아무 연습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쓰기 위해 무언가를 그만두는 것은 바보 같은 일입니다. 결국엔 자신이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불안감에 휩싸여 구직 사이트만 무한대로 돌아다니게 될지도 모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매일 조금이라도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 마음이 식기 전에 뭐라도 해야 했지만 딴짓을 열심히 하다 2개월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실천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이 책을 읽을 때 했던 소소한 다짐을 아직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 이후 여러 책에서도 글쓰기 동기부여를 많이 받았다. 그것들이 차곡차곡 모여서 지금에 이르지 않았을까.

 

첫 독서 의도(에세이 편집자는 어떻게 일하나)에서는 조금 벗어났지만 더욱 값진 것을 얻었다. 본래 저자가 말하고자 한 바(에세이를 쓰는 법)를 충실히 따른 셈이다. 불순한 의도(?)로 접근한 나조차 에세이 작가가 되고 싶어졌으니, 에세이 작가가 되고 싶은 이에게 얼마나 더 큰 선물을 줄지.

 

에세이를 쓰고 싶다면, 잘 쓰고 싶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책 제목 :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분야 : 인문
소분야 : 글쓰기
지은이 : 김은경
출판사 : 호우
쪽수 : 240쪽
출간일 : 2018년 07월 20일
ISBN : 979119628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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