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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딛은 열두 발자국을 따라가며

'나'를 생각하고 '나'를 고민해 보았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의 곰돌이 푸 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신간이다. 알쓸신잡을 보기 전에는 정재승이라는 이름은 잘 모르고, <과학콘서트>라는 책만 알고 있었다. '아, 그 책의 저자가 저 분!'이라고 깨달았다. <과학콘서트> 같은 책을 또 내주시길 기대했는데 드디어 나왔다(물론 7월 출간 도서를 이제 읽은 것이지만).

 

이번 책 <열두 발자국>은 정재승 교수가 여러 강연에서 펼친 이야기 중 12가지를 묶어낸 책이다. 정재승 교수가 정리한 11개 장과 신연선 출판 칼럼니스트가 정리한 1개 장, 두 인터뷰를 정리한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 그런지 정재승 교수의 말투로 글이 읽히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 (웃음) 등으로 청중의 반응을 조금씩 넣어서 읽으면서도 실제로 강연을 듣고 있는 기분도 들었다.

 

이 책의 제목인 ‘열두 발자국’은 ‘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딛은 열두 발자국’을 줄인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의 제목을 궁리하면서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Six Walks in the Fictional Woods>을 떠올렸습니다.
‘가끔 나의 이야기는 이 거대한 우주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한 대목에서, 에코는 아주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합니다. (중략) 그는 이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술회했습니다. 천체투영관이라는 과학적이면서도 허구적인 장치가 내 삶의 진실과 맞닿아 있는 경험이었기에 말입니다.
감히 바라길, 이 책 또한 여러분에게 그런 경험이길 기대합니다.
// 프롤로그

 

요즘 내 마음속에 '퇴사'가 박혀 있어서 그랬는지, 또 퇴사와 관련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도 뇌과학이 들려주는 삶의 성찰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다니는 학교가 너무 싫어서, 지금 다니는 회사가 싫어서 그만두는 건 좋은 의사결정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건 괜찮지만, 지금 이게 싫으니까 그만두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진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대책도 없죠. 그 순간 너무 싫기 때문에 도망치듯 그만두지만,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만두는 순간,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전략이 다시 바뀌게 됩니다. 무직 상태이거나 학교도 안 다녀서 빨리 뭔가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앞에서 본 마시멜로 챌린지의 인센티브 실험처럼 시야가 좁아지고 취직 자체가 중요해져버려 꿈꾸던 무언가에 도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터널 비전 현상이 벌어지는 거죠. 지금의 자리가 싫다면, 뭘 꿈꿔야 할지 계속 고민하면서 대안을 찾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첫 번째 발자국, 선택하는 동안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지금 나의 고민이다. 퇴사하고 싶다. 퇴사하고 싶다는 마음은 참으로 명확한데, 그 이유가 불분명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지 않는 것인지, 분야가 안 맞는 것인지, 그저 회사가 싫은 것인지. 어떤 때는 분야가 안 맞는 것도 같고, 어떤 때는 그저 회사가 싫은 것도 같다. 어느 회사나 다 안 좋은 면은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 섣불리 그만두지도 못하겠다. 정재승 교수의 말이 맞다. 이게 싫으니까 그만두는 건 좋지 않다. 그저 도망치는 것일 뿐이다.

 

이런 나의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네 번째 발자국에서 찾았다. 다음의 내용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살펴보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혼자 노는 사람인가, 아니면 같이 노는 사람인가?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은 내가 어떻게 일할 때 가장 행복한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혼자 노는 게 즐거운지 함께 노는 게 즐거운지, 나는 몸을 움직이면서 노는 사람인지 두뇌의 유희를 즐기는 사람인지, 이성적인지 감성적인지 말이지요. ‘나는 무엇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무엇을 지향하는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내 즐거움의 원천인 놀이 시간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 네 번째 발자국, 인간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퇴사 고민의 해결 방법을 '놀이' 속에서 얻게 될 줄이야. 위 내용을 읽으며 답답한 마음 한구석에 빛.. 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나의 힌트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퇴사를 고민하기 이전에,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야겠다. 이렇게 말하니 거창하게 들리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겠다는 말이다. 우선 하나는 찾았다. 글을 쓴다.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않나.

 

그리고 또 하나의 해결 방법, 다양한 체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겠다.

 

결정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각의 선택지가 가진 장단점을 파악한 뒤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할 때 그 사람이 인생에서 경험한 선호나 우선순위가 적용됩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할수록 결정이 쉬워져요. (중략)
정확한 계산을 위해서는 과거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과거에 스스로 선택해본 경험이 별로 없으면 그만큼 의사결정에 확신이 적겠죠? (중략) 자기가 가치 판단을 잘 못하는 경우라면, 실패해도 좋으니 스스로 가치를 평가해서 의사결정을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는 경험이 필요해요.
// 두 번째 발자국, 결정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분야가 나에게 맞는 것인가는 이번 직장에 이직하면서부터 계속해 온 고민인데,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했다. 이 분야(와 전 직장의 분야) 말고 다른 분야를 해 보지 못해서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책도 읽을 때 좋은 책과 만들 때 좋은 책은 다르지 않을까. 좋아하는 일도 일로 하면 안 맞고 불편하지 않을까.' 그런 추측만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체험해 본 내용이라면 고민하지도 않았겠지?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다음 내용 덕이다.

 

끝으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독서, 여행, 사람 만나기입니다.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하는, 특히 평생에 거쳐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이 바로 독서, 여행, 사람들과의 지적 대화입니다. 다시 말해, 끊임없이 세상으로부터 자극을 받으시라는 겁니다. 의미 있는 세상과의 충돌, 이것이 우리의 인생을 바꿉니다. 이 세 가지는 자기가 직접 물리적 환경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 일곱 번째 발자국,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독서나 여행은 그나마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 쉬운 편이다. 좋아하는 책만 자주 읽는 분야의 책만 읽었다. 장소만 달라졌을 뿐 비슷한 일정과 상황으로 여행을 다녔다. '평소에 잘 안 읽는 책도 읽자, 안 해본 여행을 하자' 하는 것은 마음먹기도 어렵지 않고 실천하기도 쉽다. 그러나 사람 만나기는 그렇지 않다. 나이 들수록 나와 결이 맞는 사람과만 있고 싶어진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지 하는 생각도 잠시뿐, 실행까지는 선뜻 되질 않는다.

 

나는 점점 인지적 유연성 없는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일까.

 

아주 미치도록 놀라운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그걸 받아들이려면 기존의 상식으로는 어렵습니다. 기존의 상식에 비추어보면 매우 이상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세상을 바꿀 만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거죠.
그래서 우리에겐 ‘인지적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상황이 바뀌었을 때 나의 전략을 바꾸는 능력’을 말합니다. 가진 것이 망치뿐인 사람은 세상의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입니다. 내 앞에 놓인 모든 문제를 망치질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죠. 그렇지만 상황이 바뀌고 문제가 바뀔 때 내 연장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인지적 유연성입니다.
// 열 번째 발자국, 혁명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지금 내 상황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다시 말해, 욱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따져 보아야겠다. 그것이 열한 번째 발자국에서 설명한 위험한 상황과 모호한 상황, 위험 감수 성향과 위험 관리 성향에 관련한 내용이기도 하고.

 

실제로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모호한 상황과 위험한 상황을 잘 구분해 대응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중략) 내가 성공할 확률, 즉 내가 원하는 가치를 얻을 확률이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그 확률을 알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위험한 상황이라고 정의합니다. (중략) 반면, 우리가 그 확률을 계산할 수 없을 때 그것을 ‘모호한 상황’이라고 정의합니다. 내 성공 확률이 100퍼센트가 아닐뿐더러, 몇 퍼센트인지 계산조차 어려운 상황을 말합니다. (중략)
하지만 이렇게 40퍼센트라는 확률을 아는 경우는 위험한 상황으로 분류되고요, 그 확률조차 모르면 모호한 상황이라고 분류됩니다.
확률을 알 때와 모를 때 사람들의 행동은 달라야 합니다. 확률을 모르면 합리적인 판단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면, 이제 그 수치를 보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성공 확률이 높다고 여길지 낮다고 여길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요.
이런 관점에서 라피와 펑 박사팀의 연구결과는 더욱 놀랍습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성공한 사람들은 위험 감수 성향보다는 위험 관리 성향이 강하다는 결과 말입니다. 그들은 모호한 상황에서는 쉽게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며, 그 확률을 제대로 계산하려고 애씁니다. 계산 결과 확률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보수적으로 해석합니다.
// 열한 번째 발자국,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에 도전하는가

 

나의 고민을 덜어주고,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오후 반차를 내고 회사 땡땡이를 치며 읽은 책인데, 쉬길 잘한 것 같다. '과학자의 책이 궁금하다, 과학적 사고를 하고 싶다'로 시작한 <열두 발자국>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철학적 질문을 잔뜩 얻었다.

 


책 제목 : 열두 발자국
분야 : 인문
소분야 : 인문교양
지은이 : 정재승
출판사 : 어크로스
쪽수 : 400쪽
출간일 : 2018년 07월 02일
ISBN : 97911605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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