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나를 다그칠 필요는 없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을 하고 있다. 현 직장에 들어온 지 벌써 3년여 가까이 되었다. 분야도 바꿨다. 다른 분야의 일을 한다는 것은 모험이기도 했다. 나에게도 전문 분야가 있는데 괜히 다른 곳에 와서 삽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은 입사 초반부터 들었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점점 나아지겠지 생각하고 버텼다. 그런데 점점 나아졌다는 생각은커녕, 나도 일 잘한다는 소릴 들으며 일했는데 왜 바보천치 소리를 듣고 있나 싶다.
나도 저자처럼 괜찮은 척을 그만두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이 역시도 그저 핑계겠지. 작년부터는 서점가에 퇴사 열풍이 분다.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듯이. 그래서 자꾸 퇴사 관련 책을 들춰 봤다. 하지만 그들처럼 나도 확 사표를 던지고 나오진 못 했다. 현실의 벽, 더 정확히는 경제적 상황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2018/10/07 - [책수다] - <희망퇴사> 누구나 사직서 한장 품고 사는 거 아니겠어요
“우린 사실 사는 게 아니라 점점 죽어가는 중이야.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 남았을지 모를 수명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을 거야.”
죽지 못해 사는 것, 혹은 매일 매 순간 조금씩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우리는 삶을 두고도 이토록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구나’ 싶었다.
그러자 궁금해졌다. 아침마다 평소와 다름없이 눈이 떠져 살면서 동시에 죽음에 다가가고 있는 중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중략)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결국 오늘, 지금에 충실할 것. 언제 죽을지 모르니 더더욱 말이다. 달리 말하면 언제까지 살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시간에 만족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제 남동생이 “누나는 사는 게 뭔지 알아?”라고 묻는다면(물을 일도 없겠지만) 이렇게 답하고 싶다.
‘오늘을 위한 일을 지금 당장 하는 것.
그렇게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맞이하는 것.’
그게 사는 것 아닐까.
위 내용을 읽으니 꽤 오래전 일이 생각난다. 대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친구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고3 수험생활을 하는 동안 친구는 백혈병 투병 생활을 했었다. 떠난 친구가 그리워, 또 다른 친구와 납골당으로 향했다. 납골당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살아가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것 같다고. 슬픈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 슬픈 말이 자꾸 떠오른다. 내가 나의 귀한 시간을 함부로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열심히 해야지.’
늘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편이다. 타고난 낙천주의와 게으름이 의아할 정도로. 다른 사람의 시선은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살아왔다. 정확히는 열심히 사는 것을 좋아했다. (중략)
‘열심히 하는 나’, ‘기어코 해내는 나’가 좋았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벌이는 힘은 아마 여기서 비롯했을 것이다. 결코 한 가지에만 몰두하지 않았고 작은 성취에 만족하지 않았다. 스스로 ‘열심’이 끌고 와 나를 몇 번이고, 몇 배로 혹사시켰다. 그리고 만족했다. (중략)
그러나 더 이상 이런 자기 암시’가 먹히지 않기 시작했다. 취업 후 2년 뒤의 일이다. ‘열심’만으론 부족했다. 그동안 쌓인 경험대로 열심히 하기만 하면 만족감이 따라오던 시절과 다름을 매일 피부로 느꼈지만 우선은 바보같이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더, 더, 더!
노력하란 말이야!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크게 달라질 게 없는 하루들의 연속이었다. 학창시절과 달리 대가가 사라진 열심은 기어코 나를 덮쳤다.
번 아웃.
지쳤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양치를 하다가,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면서 한때 마법의 주문이었던 ‘열심히 해야지’를 읊으며 스스로를 다그쳤지만 소용없었다.
‘이 이상 더 열심히 할 수는 없어.’
그게 내 결론이었다. 내가 가진 열심을 모두 소진해버린 것 같다. (중략)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후회가 없지.’
겨우, 어쩌면 고작 15년 살았던 과거의 난 그렇게 생각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한다고.
지금의 나에게 다시 물어본다.
'왜 열심히 살아야 돼?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여전히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아마 평생 그 답을 찾기 위해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이미 이렇게 결론내렸다. 아무렴, 뭐 어때. 사람이 매사, 매번 열심히 살 수는 없다.
처음으로 인정했다. 열심히 살지 않는 나. 그건 문제가 있는, 고쳐야 하는, 다시 열심이어야 하는 내가 아니다. 그것도 그냥 나다.
핵심이 되는 문제는 따로 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주위에 곁다리들만 늘리고 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다른 일만 늘어나니, 내가 나를 너무 혹사시키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내 성격이 나를 괴롭히는 꼴이다.
그런데 이제 한계다. 번아웃되었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고, 그 직전쯤은 된다. 앞뒤 재지 않고 일단 사표부터 던지고 싶은데, 들여다보는 구직 사이트마다 우울하다. 결국에는 내일도 오늘처럼 괜찮은 척을 해야 할까.
성의 없이 보낸 시간에 관대해졌다. ‘열심’이라는 단어와 멀어졌다. 쓸데없이 나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그만두자 비로소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나 스스로 만든 생각이 오히려 후회를 만드는 것 같다. 그냥 대충 살면 후회의 기준도, 아쉬운 이유도 없는 건데. 나도 저자처럼, ‘열심’을 버려 볼까. 그러면 조금 나을까?
책 제목 : 괜찮은 척은 그만두겠습니다
분야 : 시/에세이
소분야 : 한국에세이
지은이 : 한재원
출판사 : 북라이프
쪽수 : 240쪽
출간일 : 2018년 02월 28일
ISBN : 979118885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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