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다는 말에는 본래 부정적인 뜻은 담겨 있지 않다.
예민한 성격 역시 나쁜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성격이 그런 성향인 것뿐이다.
귀가 밝다. 잠귀도 밝다. 중학생일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아빠가 늦게 귀가하는 엄마에게 심통이 나 현관물 걸쇠를 걸어버린 날이었다. 내 방이 현관 바깥쪽에 창이 있는 형태여서, 엄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방 창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그 소리에 내가 깬 것이었다. 냄새도 잘 맡는다. 짝궁이 샴푸 바꾼 것을 알아채거나 엘레베이터에 남아 있는 향수 냄새로 우리 팀 누가 출근했는지 맞추는 일도 종종 있었다. 시력이 좋지는 않지만 관찰력이 좋은 것인지 눈(눈치?)도 좋은 편이다. 친한 동료가 아이섀도우를 바꾼 것이나 안경을 새로 맞춘 것을 알아보기도 했다.
참 피곤한 일이다. 그만큼 내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소리니까 말이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은 일에도 나 혼자 신경이 곤두서 있을 때도 있었다. 이제 한해 두해 쌓이니 나에게는 스트레스였다.
한때 나는,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정적을 못 견뎌 했다. 나라도 무언가 말해야겠다는 압박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하는 말들은 나 역시도 급한 마음에 떠들어댄 소리라서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 생각하면 이불킥을 차기 일쑤였다. 그 말은 괜히 했어, 그 말을 했을 때 누구의 표정이 갑자기 굳은 거 같은데. 그런 생각도 들었다.
책의 앞부분에서 저자도 예민한 성격으로 겪은 고충을 풀어낸다.
‘아까 그 말은 상대가 불쾌하게 생각했을 수 있어.’
‘상대는 지루했는데 나만 즐거웠던 건 아닐까?’
분명 즐겁게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런 생각이 끊이지를 않았다. 이게 반복되다 보니 누군가를 만난 후에는 어김없이 고해성사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예상했겠지만 결론적으로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었다고 스스로 아주 나쁜 정답을 정해놓고 생각을 욱여넣는 시간이었다.
// 남들의 기분을 지나치게 신경 쓴다
그러다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성격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다 보니, 내가 감각형(S) 성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성격이라는 것이, 타고난 것이라 바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런 성격이고 싶어서 성격 검사를 거짓 작성하지 않았다면 다시 검사한대도 바뀔 일이 없다는 말이었다.
내가 '예민한 성격'에 스트레스를 받고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감각형 성격을 알게 된 것처럼, 저자도 같은 흐름이었나 보다.
그러다가 ‘HSP(Highly Sensitive Person)’라는 개념을 알면서 내가 이토록 힘들게 살아온 이유가 다름 아닌 ‘예민한 기질’ 때문임을 알았다. HSP는 미국의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이 처음 이야기한 개념인데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론 박사는 사람 중에 약 20퍼센트, 즉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은 타인보다 예민해 자극에 쉽게 반응하는 HSP 성향을 가진다고 말한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예민함이 생물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질이라는 것이다.
// 책을 쓰면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중요한 것은 ‘예민함’이란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이다. 자라면서 생긴 성향이 아니라 날 때부터 그렇게 타고난 것이라는 의미다. 후천적인 것이라면야 나의 노력으로도 얼마든지 고칠 수 있지만 타고 난 것은 그렇지 않다. 못 고친다는 핑계로 하는 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장점을 찾는 것이 더 빠르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민한 사람이 내성적인 사람인 것은 아니다. 내 경우가 그렇다. 예민한 편이지만 내성적인 편은 아니다. 저자도 '예민함과 내성적인 성향은 상관관계가 높을 뿐 항상 정비례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나는 예민한 성격이다. 바꿀 수 없어서 슬프다거나 절망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 내가 그런 성격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그 이상의 생각은 덧붙이지 않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여러 활동으로 깨달은 것이라 이 책 덕에 깨달았다고 말하기에는 양심이 찔린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였으니 이 책 덕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도 예민한 성격이 받는 오해(내성적으로 오인한다는 등)가 무엇인지, 그렇다면 예민함이란 무엇이며 왜 예민한 성격이 필요한지 풀어낸다. 예민함이 가지는 장점과 그 장점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인지도 말해 준다. 그 직업에 내 직업이 있어서 뿌듯하면서도 슬펐다. 예민한 나에게 잘 어울리는 일이라니!!! 하면서 말이다.
책 제목에서 저자가 할 말을 이미 말해 주었지만 저자는 '예민함'에 대한 이야기를 '섬세함'으로 마무리한다.
센서티브는 ‘예민한, 영향을 받기 쉬운’ 이외에도 ‘섬세한, 주의 깊은, 배려심 깊은’ 등의 의미도 있다. 따라서 HSP에는 주의 깊은 사람, 배려 깊은 사람이라는 의미도 포함된다. 어떤가? ‘센서티브’한 당신이 좀 달라 보이는가?
// 센서티브는 ‘섬세한’이란 뜻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의 출발이 '예민함'을 나쁘게 보는 시선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본래 '예민하다'는 말에는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는 뜻이 있다(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부정적인 시선은 담겨 있지 않다. 하지만 "넌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라는 식으로 부정적인 상황, '너무' 예민한 상황에 주로 사용해서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아닐까.
책에서는 '섬세하다'는 말로 정리해 내려갔지만 '섬세하다'는 말 말고도 '센서티브'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많다. 예민하다, 예리하다, 섬세하다, 민감하다, 정교하다, 치밀하다... 그 뜻에는 약간 차이가 있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뉘앙스도 조금씩 다르니 각자 자신에게 더 잘 어울리는 '예민함'을 표현할 말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끝으로 책에 나온 체크리스트를 덧붙인다. 직접 체크해 보고 이 책을 읽을 것인지 생각해 보자.
나는 얼마나 예민할까?
“V”가 열두 개 이상이면 이 책을 꼭 읽어야만 하는 사람이다.- 주변 분위기의 미묘한 변화를 잘 알아차린다.
- 타인의 기분에 잘 휘둘린다.
- 통증에 매우 예민하다.
- 혼자만의 장소로 도망치고 싶을 때가 많다.
- 커피를 마시면 잠이 오지 않는다.
- 강한 빛이나 냄새 등을 못 견딘다.
- 상상력이 풍부하고 공상에 잘 빠진다.
- 소음에 예민하다.
- 미술이나 음악에 심취해 감동을 잘 받는다.
- 나는 매우 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 사소한 일에도 잘 놀란다.
-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할 때 혼란스럽다.
- 상대가 왜 불쾌해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 한 번에 많은 일을 하는 게 유독 어렵다.
- 실수가 두려워 남들보다 더 많이 체크한다.
- 폭력적인 영화나 영상을 잘 보려 하지 않는다.
- 배가 고프면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기분이 나빠진다.
- 뭔가 변화가 생기면 혼란스럽고 익숙해지기 어렵다.
- 섬세한 향기나 맛, 소리, 음악이 좋다.
- 평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 타인이 의식되면 긴장해서 실력 발휘를 못 한다.
- “예민하다”, “내성적이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책 제목 :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
분야 : 인문
소분야 : 심리
지은이 : 다카다 아키카즈
출판사 : 매경출판
쪽수 : 180쪽
출간일 : 2018년 03월 15일
ISBN : 9791155428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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