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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잘 안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책을 만났다. 저자인 '이경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책을 펼쳤다. 잘 안 되고 있는 나에게 안부를 물어줄 것 같아서.


표지를 넘겨 보니, 이 책의 저자는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영화 <미쓰 홍당무>와 <비밀은 없다> 감독, 이경미.


영화 <비밀은 없다>를 보고 이 감독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가 궁금했었다. <비밀은 없다>를 보면서 굉장히 불편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안 맞아, 안 맞아." 했을 정도로 굉장히 불호였는데, 자꾸 영화를 곱씹게 되었다. 어떻게 이 영화를 구상하고 펼쳐냈는지 그 과정이 궁금해 관련 기사 몇 개를 찾아 읽기도 했었다.



<미쓰 홍당무>에도 <비밀은 없다>에도 '교사'라는 직업이 등장한다.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직업군임에도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교사들은 그렇지 않다. 조금 불편한 비틀기였다. 친구에게 농담 삼아 "감독이 안 좋아하는 사람이 교사인가 봐."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한편으로는 허를 찔린 것 같기도 했다. 가면 뒤에 감춰 놓은 모습을 잘 꼬집어냈다.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공효진(미스 홍당무 양미숙 역)과 손예진(비밀은 없다 연홍 역)에게도 가혹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네가 이런 감정까지 끌어낼 수 있겠어?" 했을 것만 같았다.


책을 봐 놓고 영화 이야기가 길었다. <잘돼가? 무엇이든>을 읽으며 두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런 뒷이야기가 있었어?" 하면서 책을 읽었다. 코멘터리(commentary)를 읽고 있는 기분도 들었다.


내가 못나서 폐를 끼쳤을 직장 동료들에게 뒤늦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잘돼가? 무엇이든>의 '희진 씨'를 만들었고, 짝사랑에 실패한 나에게 '제발 너 자신을 부끄러워하지마!'라고 다짐하며 <미쓰 홍당무> '양미숙'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처럼 이기적인 사람에게도 모성애가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비밀은 없다>의 '연홍'을 만들었다.


이 책을 읽기 전 내가 느낀 이경미 감독은 개성 있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의 이미지가 있었다. 대개 영화 홍보글에서 그 이름을 접했기 때문인데 그와 함께 거론되는 박찬욱 감독의 명성 탓도 있었다.


그런데 <잘돼가? 무엇이든> 속에 담긴 저자 이경미는 조금 달랐다. 막막한 앞날을 걱정하고 스스로를 채찍질도 했다가 다독여도 보고. 어떤 부분에서는 피식 웃음도 났다. 내 일기장에 적혀 있을 법한 내용도 있었다. 


약간의 긴장과, 약간의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과...
조금 더 많은 자신감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신나고 재밌을 텐데.

2004.08.24


피식 웃으면서도 공감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창작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자산은,
습작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작가의 삶이다. (박완서)
아이 씨, 어떡하지.
2005.05.12


"아이 씨, 어떡하지." 일곱 글자에서 전해지는 그 마음이, 남 얘기 같지 않았다. 옆집 언니의 말 같기도 하고, 내가 내뱉은 말 같기도 했다.


이 책의 홍보문구에 '웃다 보면 죄책감은 날아가고 통쾌함만 남는, 솔직한 길티 플레저!'라고 적혀 있다. 책을 다 읽기도 전에 그 문구가 와 닿았다.


훔쳐보자, 저자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를!


책 제목 : 잘돼가? 무엇이든

분야 : 시/에세이

소분야 : 한국에세이

지은이 : 이경미

출판사 : 아르테(arte)

쪽수 : 256쪽

출간일 : 2018년 07월 19일 

ISBN : 9788950976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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