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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건 머리가 나빠서 풀 수 없다는 건 더 이상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황농문 교수님의 책을 최근 출간된 순서로 읽었다. <몰입 영어>를 시작으로 <몰입: 두 번째 이야기>(이하 <몰입 2>)를 읽고, <몰입>을 가장 나중에 읽게 된 셈이다. 사실 <몰입 2>를 먼저 읽게 된 것은 순전히 대출 예약을 잘못 걸었기 때문이었다. <몰입 2>를 읽을 때, 전작인 <몰입>에서 저자인 황 교수님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몰입 2>에서 몰입의 구체적인 방법을 적었다고 나와서 <몰입>을 안 읽어도 되겠다 싶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몰입의 구체적 방법'이었기 때문에 굳이 <몰입>까지 봐야 하나 생각했다.

 

2018/10/08 - [책수다] - <몰입 영어> 황농문 교수님의 몰입 영어공부법

 

그래도 본편을 안 읽고 후속편만 읽은 것이 찝찝하여 <몰입>을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 읽었으면 큰일날 뻔했다.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맞나 보다. <몰입 2>보다 좋았다. 우려했던 것처럼 저자의 체험만 담긴 것이 아니었다. <몰입>, <몰입 2>, <몰입 영어>의 내용이 상당 부분 겹치긴 했다. 셋 중 하나만 보겠다고 한다면 <몰입>을 추천한다.

 

이 책의 출발은 저자의 '몰입' 체험부터였다. 저자가 연구 중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몰입으로 해결한 것이었다. 개인의 체험으로 책을 낸 것인가는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저자가 몰입(flow) 이론을 정립한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 교수를 직접 만나 조언도 듣고, 지도 학생들의 몰입 체험과 여러 기업체 강연으로 어느 정도 일반화한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몰입> 에필로그 참고). SBS 스페셜 촬영으로 중학교 학생들과 수학 실험도 했다(2007년 6월 방송된 SBS 스페셜 <몰입 - 최고의 나를 만나다> 참고).

 

마지막 오전까지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학생들이 푸는 과정을 지켜보니 함수와 기울기에 대한 기본 개념이 부족한 것 같아 마지막 날 오전에 함수와 기울기에 대한 설명을 보강해주었다. 그러나 오전 중에 문제를 해결한 학생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점심식사 이후 정확한 답을 구하려고 하지 말고, 비슷한 답을 구한 뒤 정확한 값에 가까워지는 것을 생각해보라고 방향을 틀어주었다. 이 힌트를 듣고 한 명이 추가로 문제를 해결했다.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여가며 힌트를 두 번 더 주자, 모든 학생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실험은 타고난 재능보다는 고도의 집중을 통한 몰입적 사고가 문제 해결에 더 큰 작용을 한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미분에 대해 전혀 배우지 않은 중학생들이 뉴턴이 고민하던 문제를 생각만으로 풀어냈다는 것은 사고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바꾸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떤 문제건 머리가 나빠서 풀 수 없다는 건 더 이상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몇 가지 힌트와 몰입할 시간을 주었을 뿐인데, 어려운 수학 문제도 풀 수 있다니. 그렇게만 된다면 수포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암기 위주, 주입식 교육이 사고력을 키우는 데에는 얼마나 꽝인지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초반에는 몰입을 단순히 깊이 생각한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물아일체, 무아경, 미적 황홀경' 등에 견주어 설명한 다음 부분을 읽으니 이해가 쏙 되었다.

 

'순간'이 아니라 '오래'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첫째, 목표가 명확해야 하고 둘째, 일의 난이도가 적절하고 셋째, 결과의 피드백이 빨라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목표는 명확하지만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해결이 되지 않아 피드백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바로 이런 경우가 몰입하기에 가장 불리한 상황이다. 생각하는 시간은 길어지고 해결책은 오리무중이니, 자꾸만 다른 상념이 비집고 들어와 몰입이 안 되고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 그 문제를 풀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하루도 아니고 며칠을 계속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끙끙댄다면? 아마 우리 몸에서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 자체를 대단한 위기 상황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얼마나 중요한 문제이기에 몇날 며칠을 이 문제만 생각할까? 아마도 이 문제를 해결 못 하면 죽나 보다."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뇌에서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온 힘을 쏟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체험한 몰입이다.
이 상태에 이르면 다른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그 문제만 생각할 수 있는 특별한 상태가 된다. 이 상태는 일상의 다른 몰입과는 달리 순간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조금만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주어진 문제를 풀기 위하여 최고로 활성화된 두뇌를 문제가 풀릴 때까지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 결국 자신의 지적 능력이 최대로 발휘되는 이러한 몰입 상태에서 문제를 푸는 노력이 몇 개월 이상 누적되면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우리도 본격적인 몰입을 시도해볼 텐데, 그렇다고 긴장할 건 없다. 누구나 만만히 여기는 ‘생각에 잠기기’가 몰입의 본질이니까. 칙센트미하이는 운동선수가 말하는 ‘물아일체의 상태’, 신비주의자가 말하는 ‘무아경’, 화가와 음악가가 말하는 ‘미적 황홀경’이 몰입이라고 하였다.

 

불교에서 '삼매(三昧)'라는 말이 있다. '나 요즘 독서 삼매경에 빠졌어.'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때 나오는 삼매 말이다. 삼매를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검색하면, ' 한 가지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일심불란(一心不亂)의 경지, 순수한 집중을 통하여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로 불교 수행의 이상적인 경지'라고 나온다. 몰입도 바로 삼매가 아닐까.

 

이와 같은 설명은 <몰입 2>에서도 나온다.

 

내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몰입은 단 1초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한 생각만 하는 극단적인 시도를 지속한 끝에 펼쳐지는 새로운 정신세계에 관한 것이다. 불교의 수행방식인 화두선의 삼매와 상당히 유사한 이 상태에서는 지극히 행복한 감정을 느끼며, 평상시에는 떠오르지 않던 기적과 같은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샘솟듯이 떠오른다. (중략)
몰입은 의식이 산만하지 않은 고도의 질서정연한 상태로, 분명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다. 의식의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몰입에 대한 이해는 뇌과학과 엔트로피 법칙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중략)
몰입적 사고는 창의성을 요하는 업무, 특히 미지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고자 할 때 유리하다.

 

하지만 생각을 오래 한다는 것은 '고민'을 오래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음 내용 역시 <몰입 2>의 내용이다.

 

고민과 생각의 차이
기업가들이 자나 깨나 사업에 대한 생각을 하는 이유는 대개 위기감이나 고민 때문이다. 즉, 위기감이나 고민이 자꾸 사업과 관련된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고 그런 생각 끝에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많이 고민한 끝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나 깨나 생각한 결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고민은 단지 생각을 유도할 뿐이다.
고민과 생각을 확실히 구별해야 한다. 고민이 지속되면 노이로제가 되고 스트레스와 병을 유발하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생각을 지속하면 부작용이 거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에너지 중 일부는 고민하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는 생각하는 데 사용한다. 대략 50퍼센트는 고민하고, 50퍼센트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 내가 해온 것은 '생각'이 아니라 고민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프고 잠을 못 잤다. 올바른 방법으로 생각을 지속한 것이 아니라 근심, 걱정을 동반한 고민을 했다. 애초에 고민한다고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고민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민을 위한 고민을 하고 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몰입하기 적합한 문제는 무엇일까? 문제를 설정할 때, 다음 내용을 고려한다.

 

- 미해결된 문제 중에서 중요하고 핵심이 되는 것을 문제로 삼는다.

- 초기에는 '왜'라는 형식의 물음으로 한다. '왜'에 대한 답은 한 가지 원인으로 생각을 집중시켜 수렴적 사고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 몰입 상태에 들어간 뒤에는 '어떻게'라는 분산적 사고에 관한 문제를 다루어도 몰입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요 며칠 내가 '고민'한 것들이 '어떻게'에 해당하는 문제였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철학적인 내용에 가까웠다. 앞에서 언급한 수학 실험처럼 생각을 오래 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더해줄 힌트, 정보가 없기도 했다. 아직 몰입을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 끝판왕 문제를 다룬 셈이었나 보다.

 

<몰입> 6장에서는 몰입에 이르는 다섯 단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단계 생각하기 연습 - 20분 생각하기
- 방법 : 풀리지 않는 문제를 20분간 생각한다. 하루에 5번, 2주 이상 연습한다.
- 의미 : 몰입 준비 단계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인다.
- 목표 :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다.

2단계 천천히 생각하기 - 2시간 생각하기
- 방법 : 풀리지 않는 문제를 2시간 동안 생각한다. 하루에 한 번, 2주 동안 연습한다.
- 의미 : 힘들이지 않고 오래도록 생각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
- 목표 : 생각하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고 하루 종일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한다.

3단계 최상의 컨디션 유지 - 하루 종일 생각하기
- 방법 : 좋아하는 운동을 규칙적으로 매일 1시간씩 한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매일 2시간 동안 생각하고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생각한다.
- 의미 : 며칠이고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컨디션 유지 과정
- 목표 :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규칙적인 운동이 필수임을 깨닫고 습관으로 만든다.

4단계 두뇌 활동의 극대화 - 7일간 생각하기
- 방법 : 풀리지 않는 문제를 7일간 생각한다.
- 의미 : 고도의 몰입 체험
- 목표 : 하루 종일 그 문제만을 생각하게 되어, 문제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잠들고 문제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잠에서 깬다.

5단계 가치관의 변화
- 방법 : 한 달 이상의 지속적인 몰입 체험
- 의미 : 몰입 체험을 통한 변화
- 목표 : 최상의 삶에 대한 깨달음

 

나는 아직 몰입을 시도하지 못했다. 나에게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사소한 문제들은 있다. 그러나 하나의 문제를 설정하여 몰입을 시도해 볼 생각이다. 앞으로 내 삶에 '몰입'이 가져다줄 엄청난 효과를 직접 느껴보고 싶다.

 


책 제목 : 몰입
분야 : 자기계발
소분야 : 자기혁신/자기관리
지은이 : 황농문
출판사 : 알에이치코리아
쪽수 : 290쪽
출간일 : 2007년 12월 10일
ISBN : 9788925514826

 

책 제목 : 몰입: 두 번째 이야기
분야 : 자기계발
소분야 : 자기혁신/자기관리
지은이 : 황농문
출판사 : 알에이치코리아
쪽수 : 400쪽
출간일 : 2011년 05월 05일
ISBN : 9788925542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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